영국 대학 기숙사에서 전범기를 보았습니다

Posted by Soccerplus
2013. 5. 16. 08:00 텔레비젼 이야기/세상 이야기

축구 블로거인 제가, 축구 이외의 글을 쓴적이 정말 오래간만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오늘은 축구글을 쉬고 이 글을 쓰려합니다. 저는 지금 영국 기숙사에서 살고 있고, 이 기숙사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말이었습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슈퍼에 장을 보고 왔고, 늘 그렇듯 기숙사에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혼자서 다니는 시간이 많기에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게 습관이 되어있는 저인데, 그날은 믿을수가 없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범기가 기숙사의 복도에 떡하니 걸려있던 것이지요. 순간 가슴이 너무나 뛰고 제 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수십미터를 걸어왔다가, 다시 돌아가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전범기였지요. 

그리고 제 방에 들어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이었기에 리셉션도 닫혀있었고, 다수 대 소수의 구도가 예상되는지라 상당히 겁을 먹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다음날 바로 리셉션을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보여주었고, 설명을 했으나 이들은 이 깃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이곳까지 와서 영어를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한게 너무나 마음 아팠던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조사를 해본다고는 했지만 왠지 못미더웠습니다. 

그냥 너무도 열받고 분해서 전범기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스크랩했습니다. 다행히 전범기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영문사이트가 있어서(우리나라에서 만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시아의 하켄크로이츠다, 일제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그중에 아시안의 수도 적지 않은데, 저 깃발을 다 보이는 곳에 걸어놓은 것은 상식적으로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스피킹에는 자신없었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식적인 항의서한을 학교측에 전달했습니다. 

몇일 동안 답이없어서 이들이 저를 무시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어제 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숙사를 관장하고 있는 매니저의 답이었습니다. 

 I have spoken to the residents of this flat who have removed the offensive flag.  Having discussed this with those responsible for displaying the flag it is my opinion that this was a genuine mistake and that those responsible did not realise the significance of the flag until I explain it to them, I must admit that I was not fully aware of the deep significance of this until the issue was raised and I did some research.

 

The residents of flat  have been in to speak to me today, having done some research themselves they are very embarrassed and apologetic that this has happened. They have asked if you would agree to me giving them your email details to them so that they can apologise personally to you.

 

Please note that at present all details of the complaint are confidential and I will only pass on your details with your consent. This decision is completely yours. Please contact me and let me know whether you would agree to this or not.

 

I hope that this resolves this issue for you and would like to apologise myself and on behalf of my team that we too overlooked this until you prompted us.

 

제가 이 플랫(기숙사)에사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들은 그 깃발을 없앴습니다. 이 깃발을 건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고, 제 의견은 그들이 단순히 실수한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이 깃발에 대해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 깃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나오고 내가 조사를 했을 때까지 제가 이 상황에 대한 깊은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한 것도 인정합니다.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이 오늘 제게와서 , 그들 역시 이 깃발에 대해 조사를 했으며 매우 당황스럽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며 저의 이메일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의 항의는 비밀로 지켜질 것이고, 당신의 동의가 있을 때만 당신의 정보를 넘겨줄 것입니다.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제게 동의하지 않는지를 알려주세요


저는 이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하며, 당신이 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이 문제를 간과한 것에 대해 저희 팀을 대신해 사과드립니다. 


선진국다운 태도였고, 그들의 의식을 느낄 수 있는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미안해했고, 이 깃발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제 메일주소를 넘겨주었고, 다시한번 개인적인 사과의 메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깃발을 건 사람이 일본인이라면 큰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일본인은 아닌듯 보이고, 최소한 그 기숙사에 살고 있는 십여명의 외국인 들은 그 깃발이 무슨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사과를 해야겠습니다만, 이 사과는 제가 아닌 수많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면서 이 깃발을 다 보이는 곳에 걸었다면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이를 모르고 있는 상태라는게 그나마 저를 이해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만약 그곳에 나치기가 달려있었다면 무슨일이 생겼을까요. 물론 그럴일도 없었겠지만,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곳에 달려있었던 그 깃발은 최소한 제가 항의를 하기 전에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나치기를 걸었던 그 학생은 기숙사에서 퇴출당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뜻을 몰랐던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 깃발은 '몰랐다'라는 이유하에 단순히 사과로 끝이나 버렸습니다. 


만약 제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깃발은 아무도 그 뜻을 모른채 계속해서 그 자리에 달려있었겠죠. 이 곳 영국을 돌아다니다가도 저 전범기의 문양이 그려진 가게나 옷을 어렵사리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문양이 나치의 문양이었다면, 과연 그 가게가 그 자리에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지난주 무한도전의 TV특강을 보고 저역시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제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수능에서도 국사를 선택했고, 한국사능력시험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기분입니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저보다도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아찔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정말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으면, 저 전범기를 보고도 다른 서양인들 처럼 아무 감정없이 지나갔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찔했습니다. 


지난 3월 베를린으로 여행을 가서 가장 크게 느꼈던건 독일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얼마나 깊은 반성을 하고 있는지였습니다. 유대인 박물관에가서, 그리고 홀로코스트 기념관에가서 느꼈던 느낌은 베를린이 자랑하는 수많은 박물관보다 훨씬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일본의 반성은 무엇일까요. 왜 이 전범기가 지구반대편 영국의 대학 기숙사에 걸려있어야 했을까요. 원하는 조치와 사과를 받았습니다만 그냥 씁쓸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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