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맨유전 골, '박지성의 재림'을 보았다

Posted by Soccerplus
2013. 11. 25. 08:53 해외파 이야기/다른 선수들


후반 종료 15분을 남긴 시점, 익숙한 붉은 색의 유니폼에 13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국 선수가 등장했다. 붉은 유니폼에 13번, 우리에게는 박지성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렇게 13번 선수는 정말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는 맨유를 상대로 후반 종료직전 비수를 꽂았다. 한국 선수가 처음으로 맨유를 상대로 넣은 골이었고, 갈길바쁜 맨유를 잡아내는 골이었으며, 그의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기도 하였다. 

90분동안 맨유가 앞선 경기를 했지만 경기 종료가 된 뒤, 카메라의 원샷은 김보경을 잡았다. 김보경이 동료들과 악수를 하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정말 오랜시간동안 잡혔다. 뿐만아니었다. BBC, 스카이스포츠, ESPN, 프리미어리그 공식홈페이지등 주요 언론의 메인에도 김보경의 얼굴이 잡혔다. 그만큼 극적인 골이었고, EPL 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골이었다. 

맨유팬들은 박지성에게 자책골을 허용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3번의 유니폼을 입은 동양인이 그들에게는 박지성말고는 없지 않은가. 박지성이 직접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선수의 골이었다. 물론 맨유 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골은 아니었다. 스토크, 노리치, 풀럼, 노리치를 연속해서 꺾고 4연승을 달리면서 맨유는 선두권으로의 진격을 하는 과정에 있었다. 하위권 카디프를 상대로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주중 챔스리그를 대비하는 듯 했지만, 김보경의 골로 모든 계산이 어긋나버렸다. 

김보경의 헤딩골 직전, 김보경의 전담마크맨은 다름 아닌 패트리스 에브라였다. 박지성의 절친, 바로 그 에브라였다. 에브라는 골을 허용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먼곳을 응시했고, 카메라는 그의 뒤에 비치는 카디프 관중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비췄다. 맨유 팬들은 그의 베스트 프랜드인줄 알고 김보경을 놓아주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보경 본인에게도 너무나 무척이나 간절한 골이었다. 김보경은 데뷔후 골도 공격포인트도 없었다. 공격 포지션에서 공격포인트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폼이 조금씩 떨어져가는 모습이었고, 한두번 보여주는 날카로움으로는 선발출장을 보장할 수 없었다. 조던 머치에게 주전자리를 내어주어야 했고, 이번 경기에서도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걱정스러웠던 것은 홍명보호에서도 김보경의 활약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보경은 스위스와 러시아전을 모두 출장했지만, 과거 말리, 브라질전처럼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이 자신감에 불타올랐던 스위스전에서도 김보경은 전반 좋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이근호와 교체되었다. 이근호가 등장하면서 대표팀의 경기력이 살아올라왔고, 김보경의 마음은 착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골은 김보경에게는 정말 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보경의 골은 단기적으로 보면 그가 여전히 골감각을 보여주고 있고, 승부의 갈림길에서 투입할 수 있는 적절한 카드라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그의 EPL 커리어에서 데뷔골이 될 이번 골은, 팬들에게 길이길이 기억이 남을 골이 될 것이다. 지동원의 맨시티전 골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말 골이 터지지 않아 답답하던 시점이었고, 그 골이 드디어 터졌다. 상대는 맨유였다. 홈팬들앞에서 그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카디프 팬들은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김보경에게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격려를 골로 보답했고, 카디프 팬들은 스타디움이 떠나갈 정도의 응원가로 다시한번 보답을 했다. 동점골이 들어간 뒤, 카디프 시티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정말 대단했다. 팬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않고 그가 경기장을 벗어날 때까지 함께했다. 

박지성이 맨유이던 시절, 아스날 팬인 친구가 '박지성에게 골을 먹히는 기분을 아느냐?'라고 물었을 때 맨유팬들은 그 기분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서야 맨유팬들도 그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말로 갈길이 바쁜 맨유의 발목을 잡았다. 레버쿠젠 토트넘, 에버튼, 뉴캐슬이라는 만만치 않은 대결을 앞두고 있는 맨유에게 김보경의 헤딩골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드디어 터졌다. 김보경의 첫골은. 그리고 이 골로 인해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자신감을 찾고 다시 주전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대하고, 더 많은 골로 주말밤을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 EPL 12라운드의 주인공은 김보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