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나의 자식에게 박지성을 이야기 한다면

Posted by Soccerplus
2014. 5. 15. 08:00 해외파 이야기/박지성


박지성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5월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코리아투어를 한 뒤, 6월에는 아시안드림컵, 그리고 7월 K리그 올스타전을 통해 현역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합니다. 너무나 아쉽고, 수도없이 말했던 박지성이라 그런지 제게는 느낌이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훗날 박지성 선수가 지금의 차범근 선수처럼 나이가 들었을 때, 과연 어떻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달을 해야할 지 생각을 해보다가 새로운 구성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아들: 아빠~ 축구를 보는데 자꾸 박지성이란 선수의 이름이 나와. 이 선수가 정말 대단한 선수였어?

아버지: 응, 아들아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였고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선수야. 이제는 이름도 잘 모르는 차범근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로 기록될 선수지. 2002년 월드컵부터 2010년 월드컵을 뛰면서 세 대회에서 연속 골을 넣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이나 뛰었고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선발로 두 차례나 나온 선수지. 

아들: 정말? 얼마나 뛰어났길래 그정도였어?

아버지: 정말로 성실한 선수였어. 박지성 선수의 발에 페인트를 칠하면 경기장 모든 곳에 색이 칠해질 것이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기술적으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기에 완벽한 선수라고는 말 못하지만 기본기가 뛰어났고, 특히 전술과 팀플레이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지. 특히 퍼거슨 감독의 지휘아래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윙어, 중앙 미드필더, 어쩔땐 풀백까지 소화했던 멀티 플레이어였어.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100% 다한 선수였지. 

아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이 그렇게 대단한 클럽이었어?

응, 지금은 비록 별볼일 없는 클럽이 되고 말았지만, 박지성이 있었을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었어. 박지성이 있었던 15년전만해도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세계 최고를 겨뤘지. 퍼거슨이라는 전설적인 감독이 있었고 박지성이 있었던 7년동안 챔피언스리그 결승 3번, EPL 우승 6번을 기록한 명실상부 최고의 클럽이었지. 

아들: 그럼 박지성의 동료들도 대단한 선수들이었겠네?

아버지: 그럼. 호날두 알지? 2014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16강에서 만나 패널티킥에서 골대를 맞추고 끝나고 울었던 그 선수. 그리고 지금은 머리가 다 빠졌지만 당시만 해도 귀여웠던 루니와 함께 쓰리톱을 이뤘단다.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의 진영으로 역습을 나가는 장면은 맨유 팬들이 아직도 그리워하는 장면이야. 퍼디난드, 비디치, 에브라, 테베즈, 캐릭, 플레쳐 등등 수많은 선수들이 그의 동료였어. 

아들: 박지성이 최고로 활약했던 경기는 뭐가 있어?

아버지: 음, 2011년 4월에 첼시와 리그 결승을 놓고 싸웠는데, 박지성이 그 경기에서 첼시의 중원을 완전히 갈라놓았어. 사방 팔방 뛰어다니면서 상대를 압박하는데 세계 최고 선수들이 힘을 못쓰더라. 이 경기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당시 철의 포백으로 불리우던 수비진을 갖고 있는 밀란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기도 했지. 2010년 리그 울버햄튼 전에서는 혼자 2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하도 활약한 경기가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도 어렵다 아들아. 

아들: 그럼, 박지성이 제일 멋있게 넣은 골을 뭐가 있어?

아버지: 음, 아빠는 맨유에서 넣은 골도 골이지만 국가대표팀에서 넣은 골이 가장 기억에 남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일본 원정을 갔는데, 그 경기에서 박지성이 시작한지 7분만에 골을 넣었어. 일본은 8강에 가겠다고 까불고 있었는데 박지성이 골을 넣으면서 기가 팍 죽어버린거야. 골을 넣고 일본 팬들을 훑으며 산책하는 장면은 아직도 애국가에 나오잖아. 일본은 그 때부터 8강을 한번도 못알라 갔기도 하고, 박지성 때문인가?

아들: 우와, 박지성이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했어?

아버지: 두말이면 잔소리지. 2002년에는 신예로 등장해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2006년에는 지단의 프랑스를 상대로 2010년에는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었어. 박지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월드컵 골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고, 특히 2011년 아시안컵에 은퇴하기 전까지 주장을 맡으며 '캡틴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 박지성만큼 영향력있는 선수는 지금도 찾기 힘든 것 같아. 

아들: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정말 대단한 선수였구나

아버지: 그럼, 아시아 축구가 박지성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잖아. 박지성이 아인트호벤과 맨유에서 길을 열어주니 우리나라와 일본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거야. 박지성 이후에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이승우, 장결희 이런 선수들도 박지성이 없었다면 그런 업적을 달성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아시아축구의 선구자였고, 이후에도 아시아드림컵을 개최하면서 축구발전이 더딘 나라에 희망을 주기도 했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 2014년에 은퇴를 했는데, 아직도 박지성이 뛰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어디선가 포맷을 본 것도 같고, 아직 아이도 없고 결혼도 못한 몸이지만 훗날 같이 축구를 보면서 박지성이란 존재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할지 한 번 가상으로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재미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