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전, 정줄놓은 플레이에 핑계는 없다

Posted by Soccerplus
2015. 1. 14. 01:11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우리팀에게 어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었다. 아침에는 간판 스타인 이청용이 정강이뼈에 실금이 가면서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국내에 귀국하여 회복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명의 주전 선수가 감기에 걸려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또한 5명의 선수가 아예 경기장에 오지 못하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으며, 슈틸리케 감독의 말에 따르면 18명의 선수가운데서도 14명의 선수만이 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주며 승점 3점을 운좋게 따냈다. 

비가 많이 내렸다. 또한 아시안컵을 한 경기 밖에 치루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선수들이 전열에 이탈하면서 선수들이 동요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이청용, 기성용의 양쪽 윙포워드들이 경기에 아예 나오지 못했고, 지난 경기에서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자철도 결장했다. 이번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전 스타팅 라인업을 보니 매우 이색적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주전으로 나온 선수가 4명밖에 없었다. 김영권, 김승규, 차두리, 이근호, 남태희, 이명주, 김민우가 이번 경기에서 새롭게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주전을 대비한 로테이션인 줄 알고 기대가 앞섰다.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이었다. 선수들이 각종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상황에서도 쿠웨이트전은 용납할 수 없다. 4년전 신구조화를 이루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아시안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경기였다. 감독이 어떤 전술을 주문하고 나왔는지도 알 수 없는 경기였고, 선수들은 쿠웨이트를 상대로 수비에 급급하며 실점위기를 맞았다. 이날 경기에서 우리가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의 아지즈가 MVP를 받았다는 것에서 이날 경기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슈틸리케가 새롭게 올린 김민우, 남태희, 이정협, 조영철, 이명주는 이날 경기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경기에서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욱 더 안타까웠던 것은 90분 내내 정줄을 놓았던 수비였다. 장현수와 김영권은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센터백 호흡을 맞췄다. 장현수는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 주전으로 낙점했던 선수고, 김영권은 조광래, 홍명보 감독에게 중용을 받았던 선수다. 하지만 두 선수는 실수를 연발하며 아주 위험한 경기를 했다. 전반 중후반에는 장현수가 실책을 하며 퇴장위기에 몰리기도 했었다. 순간적으로 공을 놓쳐 상대 공격수와 팔이 엉키며 달렸던 장면에서 상대가 넘어져서 파울을 유도했다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수비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피딩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수비를 거치지 못하고 빌드업을 해야했으며, 그나마 기성용의 존재가 위안이 되었다. 

이청용과 손흥민의 존재감이 컸던 경기였다. 역시 이름값이 괜히 있다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동의 이름모를 선수들 앞에서 우리나라 공격진들은 돌파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상대 수비가 있으면 뒤로 물러서고 슛팅 찬스에서도 자신감없이 슛을 날리지 못하고 패스를 돌리는데 급급했다. 황태자로 불리웠던 많은 선수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격진에 무게감을 실어다 줄 김신욱과 이동국의 부상이 안타까웠다. 두 선수 가운데 한 선수라도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숏패스를 생략한 채, 롱패스로 단순한 공격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위해 투입된 이정협은 선배들과의 클래스의 차이를 드러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매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이 경기로 우리나라가 우승후보가 아님을 보여줬다며 선수들을 질책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낸 것은 처음이다. 글쎄, 슈틸리케 감독도 이 비난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든 공격진의 세부전술 하나 없이 치러진 경기같았고 선수들의 체력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14명의 선수가 피치에 섰지만 후반전 30분 이후 아예 다리가 묶여버린 느낌이었다. 쿠웨이트보다 하루를 덜 쉬었다고는 하지만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상대의 볼을 압박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유럽에서 시즌을 치루던 기성용, 박주호, 김진수가 체력적으로 괜찮아 보였고, 나머지 선수들은 발이 묶인 채 제한된 영역에서만 뛸 뿐이었다. 

차두리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번 경기는 승점 3점을 얻어내지 못했을 경기였다. 우리나라는 50년만에 조별리그 2연승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8강을 확정지었지만, 앞으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8강 이후의 토너먼트를 위해 호주전을 포기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황, 또한 정신력 무장도 안되어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8강에서 만날 우즈벡이나 중국에게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핑계의 여지는 없다. 쿠웨이트전은 다시는 보지 않았어야 할 장면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던 경기였다. 기성용과 차두리만이 정신을 차리고 뛰었던 경기였다. 단체로 정줄을 놓아버리며 최악의 경기를 펼친 우리나라다. 이번 경기로 인해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강하게 무장되었으면 한다. 홈팀 호주와의 경기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3일, 우리나라는 어떻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부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 한 슈틸리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