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8강전, 노장들이 결정지었다

Posted by Soccerplus
2015. 1. 24. 01:36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아시안컵 4강 팀이 결정되었다. 우승후보로 여겨지던 일본과 이란이 8강에서 떨어진 것은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대회 전체로 봤을 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강 진출팀은 일본과 이란이 아닌, 아랍 에미레이트와 이라크가 올라갔다. 결승전은 한국과 이라크 경기의 승자, 그리고 호주와 UAE의 승자가 맞붙게 된다. 한국, 호주, 이란, 일본 네팀이 올라갈 것으로 여겨졌던 아시안컵이었기에 이런 결과가 새삼 놀랍기만하다. 그리고 이 4강은 노장들이 결정지었다. 노장이 제 역할을 해주었던 팀은 4강에 올라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했던 팀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틀전, 우리나라와 우즈벡의 경기에선 차두리가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줬다. 후반 교체되어 들어온 차두리는 연장후반 경기를 결정짓는 어시스트를 했다. 상대방 오른쪽 측면을 완벽하게 뚫어냈고, 우즈벡 수비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상대방의 후방 공세에 밀리던 우리나라는 차두리의 놀라운 플레이로 4강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호주와 중국과의 경기의 히어로는 팀 케이힐 이었다. 팀 케이힐은 36살의 나이로 이번 대회에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고 있다. 그리 큰 키가 아니지만 탁월한 제공권과 헤딩능력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그리고 케이힐은 중국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을 4강에 올렸다. 호주가 중국에게 시종일관 앞선 경기를 펼쳤고, 기회도 많이 만들어냈지만 골을 넣진 못했다. 하지만 케이힐은 시저스킥과 헤딩으로 팀의 두 골을 모두 만들어냈고, 기립박수를 받으며 교체되어 나왔다. 역시나 팀 케이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경기였다. 

일본에도 핵심 노장 선수가 존재한다. 바로 엔도다. 35세의 나이지만 신임 아기레 감독도 엔도를 포기하지 못했다. 중원에서 볼을 뿌려줄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방에는 카가와, 혼다, 오카자키 같은 스타들이 존재하지만 하세베의 짝을 이룰 선수가 일본엔 없다. 결국 엔도를 한번 더 믿고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에겐 딜레마였다. 나이가 든 엔도는 예전만큼의 활동량과 패스의 정확도를 보여주지 못했고, 이번 경기에서도 후반 초반 교체되었다. 일본은 파상공세로 아랍에미레이트를 밀어붙였지만 순간적인 창의성을 보여줄 선수가 없었다. 특히 패널티킥 찬스에서 얄미우리만치 골을 넣어주던 엔도의 부재는 일본에게는 큰 독이 되어 날아왔다. 혼다가 1번 키커의 부담을 덜지 못하고 실축을 해버린 것이다. 엔도가 왕성한 체력으로 경기에 나서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면, 어제 경기 승부차기의 승리자가 누가 되었을지 모른다. 

상대방 UAE의 나세르 골키퍼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날 경기에서 일본은 무려 35개의 슛을 시도했지만 단 한 골 밖에 넣지 못했다. 그 골도 시바사키의 슛이 너무나 좋았을 뿐이지, 나세르가 부족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슛이었다. 믿을 수 없는 선방쇼와 안정된 키핑을 바탕으로 UAE는 경기 초반 넣은 1골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일본은 혼다를 중심으로 끈임없이 상대를 압박했지만, 결국 골키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란과 이라크의 경기에서도 노장의 활약이 빛났다. 한 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 120분 승부,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던 이란이었지만 결국 이라크에게 무너졌다. 네쿠남이라는 에이스는 두번째 골에도 기여를 하고, 승부차기에서도 골을 넣어주었지만 이라크의 에이스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유니스 마흐무드. 32살의 노장치고는 조금 어린(?)나이지만 A매치를 120경기 넘께 뛴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이라크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다. 1년간 무직이었지만 이번 대회에 당당히 주장완장을 찼다. 그리고 유니스 마흐무드는 연장전 전반 팀의 두번째 골을 넣었고, 승부차기에선 못 넣으면 팀이 탈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파넨카킥으로 상대를 넉다운시켰다. 엄청난 담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결국 이라크가 결승에 올랐다. 

나세르, 유니스는 결승행을 꿈꾸게 되었지만 네쿠남은 눈물을 흘리며, 엔도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우리나라도 차두리의 활약이 있었고, 호주도 팀 케이힐이 골을 넣어주지 못했다면 4강행을 장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큰 경기 일수록 노장들의 팀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승부차기와 같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는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우리도 차두리의 역대급 돌파를 보지 않았는가.

4강과 결승이 남은 아시안컵, 지난 조별 예선이 담금질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진검승부다. 오늘 경기에서도 보았듯이 순간이 승부를 가른다. 새로운 스타들을 기다리는 것도 메이저 대회의 묘미일 수 있지만, 이번 대회는 에이스와 노장들의 대회로 가고 있는 듯 하다. 4강전, 유니스를 앞세운 이라크의 도전을 잘 막아내길 바라며, 우리나라가 60년만에 아시안컵 트로피를 꼭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