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것은 영국인들의 삶 그자체였다

Posted by Soccerplus
2013. 5. 8. 10:00 유럽 축구 여행 이야기


처음으로 영국 기숙사에 짐을 풀고 룸메이트들과 파티에 갔었습니다. 저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미국인이기때문에 현지인들이라고는 할 수 없고, 저는 정말로 영국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그리 즐기지 않는 파티에도 몇차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들에게 한국축구선수들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었고, 우리가 아는대로 정말로 이들이 축구에 열광하는지에 대해도 알고 싶었습니다. 

몇몇 영국인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축구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슨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당연히 이곳에 연고지를 가지고 있는 '브라이튼 호브 앤 알비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네명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모두 브라이튼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당시 브라이튼과 아스날의 FA컵이 막 끝난 다음주였기에 이 아이들은 그 경기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모르는 선수가 대부분이었기때문에 이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습니다.(참고로 발렌시아에서 뛰던 비센테가 이곳에 있다고 하더군요) 이들도 프리미어리그에 본인이 좋아하는 팀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팀을 본인의 팀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면 사실 모두다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특히 영국사람들 특유의 썰렁한 개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축구이야기가 나오다보면 저도모르게 집중을 해서 듣게 됩니다. 저의 PR수업교수님은 런던출신에 아스날팬이신데, 아스날 경기의 결과에 따라 월요일 아침의 표정이 변하십니다. 특히 리버풀을 안좋아하시는데 수아레즈의 이빨사건이 나온 다음날에는 아이들과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주말마다 런던에 가면 기차안에 축구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가득합니다. 런던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은 도시라고하는 브라이튼에는 특히 아스날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가는 모습입니다. 이제 서른이 좀 넘어보이는 아버지와 초등학생도 되어보이지 않는 아들도, 흰머리가 풍성하게 난 아버지와 다큰 아들도 같은 유니폼을 입고 주말마다 경기장을 향합니다. 이들에게 세대간의 대화를 이끌어주는 것은 축구일 것이고, 이 다음 세대에도 아마도 축구는 대화의 매개체가 되어주겠지요. 

길가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온갖 욕들과 그를 뜻하는 손동작이 나오는 곳도 축구장입니다. 이들은 축구장에서 만큼은 고삐뿔린 망아지처럼 열정적입니다. 훌리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을 늘 갖고 있지만 경기장을 나서면 이들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어쩌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축구장에서 푸는 것이겠지요. 

영국은 축구의 종주국이고, 각 마을과 마을의 중간에서부터 공을 상대도시의 교회문앞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축구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남녀노소가 참여했고, 마을과 마을의 대결이었기에 그 마을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영국의 축구는 지역색을 띌수밖에 없습니다. 각 지역의 더비역시도 어찌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런던과 맨체스터의 마을이 만나는 일보다는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부딪힐일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니 말이죠. 

자신이 서포팅하는 팀의 선수들은 곧 나의 선수들입니다. 지난주말 스완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늙은 할아버지 팬이 영어를 잘 못하는 치코에게 "Swansea player next season?"이라고 묻자 치코가 그렇다고 대답했었고, 기쁨에 찬 할아버지가 치코의 볼에 뽀뽀를 하더군요. 치코도 놀란 모습이었습니다만 주변 팬들이 모두 웃으며 넘어가더군요. 참고로 애쉴리 윌리엄스도 다음 시즌에 뛰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자기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팀입니다. 나의 팀이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팀이 2부리그에 내려와도 여전히 응원합니다. 

2부리그의 경기는 한차례 본적이 있습니다. 볼튼이 런던 연고의 찰튼으로 원정을 왔었을 때의 경기였죠. 시즌 막판을 달리고 있었고 찰튼은 승격도 강등도 아닌 애매한 순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이 거의 꽉 들어찼습니다. 뭔가 젊은 사람들은 2부리그 팀 경기를 보러 오지 않을 것 같다라는 저만의 편견이 있었는데 정말로 편견일 뿐이었습니다. 축구장에 온 성비, 나이의 비중은 1부리그의 어떤 팀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팀에 한국선수들이 뛴다는게, 그리고 그 한국선수들을 보기 위해 한국팬들이 경기장에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한국 선수의 활약에 일희일비하지만 현지팬들에게는 다 똑같은 자신들의 선수일뿐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가 이들의 삶에도 들어간다는 것이죠. 축구가 이들에게 가진 엄청난 영향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스완지에서 축구를 보고 펍에서 현지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말이 있습니다. 웨일즈가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 속상하지 않냐는 저의 물음에 웨일즈가 월드컵에 나가는 것보다, 다음 시즌 카디프를 홈과 원정에서 박살을 내는게 더 중요하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주마다 월드컵을 치루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30년된 우리나라의 K리그를 이들의 생활과도 같은 유럽축구리그와 비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축구가 어떻게 이들의 DNA에 들어왔는지는 K리그에도 참고할만한 요소가 있겠죠. 상업적인 요소가 다분히 보이는 지금의 K리그보다는 생활속에서 묻어나는 마케팅전략이 더욱 더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