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에게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Posted by Soccerplus
2013. 7. 5. 11:13 해외파 이야기/기성용


저의 블로그를 자주 오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1월부터 6월말까지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타지생활이 외롭지만 저에겐 분명한 낙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주일에 한번씩 축구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5개월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15경기를 보았으니, 한달에 3경기정도는 꼬박꼬박 본 셈이죠. 

과거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 있었을 때는 맨유를 압도적으로 좋아하기는 했었습니다만, 영국현지에 가니 딱히 경기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맨유를 제가 좋아하고 있지 않더군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가 나오는 경기를 직관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몰입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죠. 맨유와 레알, 바르샤와 파리생제르망등 굵직굵직한 중요경기들을 보았습니다만 경기 순간순간의 집중력은 박지성 선수가 나오는 QPR경기에 비할바가 못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5경기중 절반을 박지성선수와 기성용 선수의 경기에 할애했습니다. QPR의 경기를, 그리고 스완지의 경기를 4경기씩 보았습니다. 6시간이 걸리는 스완지까지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면서 스완지까지 갔었던 기억도 있고,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캐피탈 원컵 결승전에 15만원가까운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웸블리로 갔었습니다. 매경기 그의 싸인을 받기 위해 기다렸습니다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4경기를 따라다녔고 절실히 응원했습니다. 그가 골을 넣은 것도 아니고 딱히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성용 선수의 숨겨진 면들이 드러난 어제, 저는 저의 지난 열정들이 너무나 후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고작 저런 선수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는지 참으로 후회가 되더군요. 친구들이 이런저런 기사를 접하고 제게 대표팀 파벌설에 대해 물어보면 절대로 그럴일이 없다며 기성용선수를 변호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아침 그런 기사가 나오자 참으로 할말이 없더군요. 

국가대표입니다. 국가대표. 그리고 그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내세웠던 것이 책임감이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나왔을 때의 기분을 이루 말하지 못한다며 더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하던 기성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대표팀의 감독을 조롱하다뇨. 그것도 SNS라는 공간에서 말이죠. 

대표팀의 경기력이 왜 그렇게 안좋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그리고 최강희 감독이 막판3연전에서 왜 기성용을 차출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얼마전 K리그 올스타전에서도 기성용 선수가 자국리그를 위해서 뛰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터뷰에서 은퇴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자국리그와 대표팀에 애정을 갖고 있는 선수가 이런 짓을 하다니.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에서 핵심전력이던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기성용 선수를 국대의 핵심자원이라고 생각해왔고 대체 불가자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그가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이 대표팀전체를 위해서 득이 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성용을 추후에 대표팀에 소집하는 것은 분명히 논란이 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역시도 홍명보 감독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겠죠. 홍명보 감독은 참으로 힘들어졌습니다. 그가 이끌었던 올림픽 대표팀의 주력선수들이 이렇게 구설수에 올랐으니 그에게도 분명히 타격은 클것입니다. 하나의 스피릿, 하나의 팀,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팀의 운영방향으로 제시했고, 그 누구보다 리더쉽에 있어선 뛰어난 감독이니 잘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대표팀이 혹시라도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면, 이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정말로 더 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기성용에게는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하지만 그런 일을 견디며 올라간 월드컵 대표팀은 이제 정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차라리 1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일이 터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팀을 추스를 기회가 아직 1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했던 한 선수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수는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젊은 선수의 패기와 자신감으로 용서가 되던 것이 이제는 더이상 용납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군요.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 지켜보고 싶습니다만 한순간에 안겨준 큰 실망감이 쉽게 씻어 내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