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은퇴, 그가 만들었던 최고의 8장면

Posted by Soccerplus
2013. 10. 24. 09:26 해외파 이야기/다른 선수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영표 선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1977년생, 만으로 따져도 36세의 나이이다. 데뷔떄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외모때문에 그가 노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성실하고 늘 투지넘치는 플레이를 했다. 수비수로 유럽에 진출해 토트넘, 도르트문트등 빅클럽을 경험했던 선수이며 국가대표팀 100경기를 가볍게 넘긴 대표팀의 레전드이고 2002년, 2006년, 2010년 세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대단한 선수이다. 

그런 선수가 은퇴를 한다니 너무나 아쉽다. 특히 이영표의 은퇴이후 대표팀 왼쪽 풀백자리는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2년, 2006년에는 공수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었다면 2010년에는 왼쪽에서 마치 벽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999년 대표팀에 처음발탁을 받아 2011년까지 뛰었고, 선수생활을 36세의 나이에 그만두게 되었다. 수비수이지만 워낙 빛나는 선수였기에 그에게도 기억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그의 은퇴를 기념해 그가 생각나는 몇가지 장면들을 추억팔이 해볼까 한다. 

1. 2002년 월드컵 2개의 어시스트

2002년 월드컵, 당시 10번 유니폼을 달고 이영표는 좌측 윙백으로 뛰었다. 초반 두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포르투갈전부터 선발출장했던 이영표는 역시 이영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헛다리 드리블로 포르투갈 선수를 퇴장시켰으며 그 경기에서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전에서도 안정환의 결정적인 골든골을 어시스트한 것이 바로 이영표였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26세의 어린 시절, 그의 공격력은 이렇게 빛났다. 

2. 2005년 AC밀란전, 박지성만 빛난게 아니었다

흔히들 아인트호벤과 밀란의 경기를 생각하면 박지성의 골만을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이영표가 있었고, 그 경기에서 필립 코쿠의 두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당시 최고의 풀백이었던 카푸를 앞에두고 크로스를 올렸고, 정확하게 올라간 크로스는 코쿠의 골을 견인했다. 당시 이영표가 없었다면 아인트호벤의 4강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좌측풀백으로의 유럽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준 대회였다. 

3. 2005년 토트넘 데뷔전

그해 여름 이영표와 박지성은 EPL로 이적하고 코리안 EPL 리거의 시대가 개막하게 된다. 그리고 이영표는 데뷔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게 된다. 좌측면에서 리버풀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스티브 피넌을 앞에 두고 농락하는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이영표의 공격본능이 가장 잘 발휘되던 시기가 이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토트넘 후반 고생하기도 했지만 한 때 토트넘의 주전선수로 누구보다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4. 2006년 박지성과의 맞대결

2006년 4월 토트넘과 맨유의 맞대결에서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는 기쁘고도 속상한 아이러니한 자연이 나왔는데, 이영표의 실수를 틈타 박지성이 볼을 빼앗아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했던 것이다. 당시 골을 넣고 박지성과 손을 잡는 이영표의 사진은 현재까지도 역대급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다. 

5. 2006년 월드컵

그의 두번째 월드컵이었던 독일에서도 이영표는 대표팀의 핵이었다. 당시 오른쪽 풀백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이영표는 좌우풀백을 모두 소화했다. 좌우에 김동진과 송종국, 조원희가 있었지만 이영표와 같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또 쓰리백과 포백을 혼합해 사용했던 대표팀에서 이영표의 전술적가치는 대단했다. 이영표는 이 대회에서 수비진에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대표팀의 원정 첫승을 이끌어냈다. 

6. 2010년 월드컵, 첫원정 16강 신화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펼친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이영표와 드록바가 마주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영표는 드록바를 상대로도 무너지지 않는 철벽의 모습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사상첫 원정 16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이영표는 4년전의 아쉬움을 답습하지 않았다. 그는 대표팀의 최고참이었지만 누구보다 많은 활동량과 기량을 자랑했다. 이영표-박지성의 왼쪽라인은 아마도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라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상대가 왼쪽으로 아예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에서의 안정감이 정말로 대단했다. 이후 대표팀의 감독들이 수비진의 안정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중 가장 큰 요인은 이영표와 같은 버팀목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7. 그의 마지막 대회, 2011 아시안컵 

그런 이영표는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박지성과 마찬가지로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이영표는 마지막대회에서도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첫경기부터 마지막경기까지 모든 경기를 선발출장하며 대표팀의 수비에 안정감을 더해주었다. 이영표가 있었기에 반대편 차두리가 빛날 수 있었고, 이영표가 있었기에 안정된 수비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수많은 후배들의 헹가레속에 영광스러운 대표팀 은퇴를 했다. 

8. 은퇴 선언한 2013년, 여전히 그리운 이영표

과거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박지성의 대체자'보다 '이영표의 대체자'를 찾는 것이 더 급하다는 글을 쓴 기억이 있다. 대표팀의 풀백자원은 이영표이후 딱히 주전감으로 말할 선수가 없다. 윤석영, 박주호, 김영권, 김진수등 많은 선수들이 오르내렸지만 아직도 그의 영향력을 보여줄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도 박지성-이영표 시대가 그립다. 그만큼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는 선수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늘 성실했고 꾸준했던 이영표였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던 그이다. 축구선수가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선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11년 7개월의 대표팀 생활뿐만아니라, 아랍이나 MLS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자신의 책임을 다했던 선수이다. 

대한민국 레전드, 그간의 노고와 노력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은퇴후에도 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