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 선더랜드, 기성용 투지로 결승행 견인하다

Posted by Soccerplus
2014. 1. 23. 08:24 해외파 이야기/기성용

작년 3월 5일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던 맨체스터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경기를 직관했던 기억이 있다. 웸블리, 스탬포드 브릿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캄프 누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기장을 모두 가보았지만 올드 트래포드는 색달랐다. 그 웅장한 경기장에서 쉴 새 없이 펼쳐지는 팬들의 서포팅을 보며, 맨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당시 경기에서 맨유가 패하면서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팬들은 박수를 끝없이 보내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퍼거슨이 지켰던 맨유의 힘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끝났던 맨유와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는 이런 맨유의 뚝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장 후반, 선수들도 응원을 하는 서포터즈들도 체력이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것은 바로 9000명에 불과한 선더랜드 팬들의 응원가였다. 자신들의 클럽을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고 자부하며 선수들에게 끝까지 응원을 했다. 9000명의 응원단은 나머지 60000여명의 맨유 홈팬들을 압도했다. 팬들의 응원 분위기만 보더라도 오늘 결과를 대충은 예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과적으로 선더랜드가 맨유를 누르고 캐피탈 원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조니 에반스에게 세트 피스에서 헤딩골을 허용하며 경기 내내 1:0으로 끌려갔다. 이 경기가 챔피언스 리그였다면 90분으로 경기가 끝났을 것이지만, 캐피탈 원컵의 독특한 규정덕택에 선더랜드는 연장전까지 경기를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선더랜드는 연장 후반 막판 바슬리의 골로 한점을 따라가며 결승행을 손에 쥐는 듯 했지만, 치차리토의 역전골로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도 10명의 키커 가운데 단 세선수만 성공을 시키는 공방전 끝에 선더랜드는 승부차기 스코어 2:1로 맨유를 꺾고 웸블리 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맨유 원정경기라는 부담감을 안고 뛰어야 하는 경기였다. 그리고 선제골을 먹히게 된다면 선더랜드도 애초에 계획했던 수비 일변도의 경기를 펼쳐나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반부터 이어졌던 맨유의 공격들을 잘 막았지만 세트피스에서 어이없이 실점하면서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더랜드는 투지로 위기를 버텨냈다. 계속해서 상대를 위협하면서 한정적인 자원으로 골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결국 투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후반 막판 바슬리의 골은 그야말로 투지의 골이었다. 연장전 내내 골을 만들기 위해 맨유를 밀어붙이던 선더랜드였다. 선수들의 다리가 풀리고 제대로 뛰지도 못해 절룩이는 상황에서 나온 골이었다. 

골 이후 다시 실점을 하면서 분위기가 매우 쳐져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전원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승부차기에 좋은 분위기를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첫번째 키커와 두번째 키커가 모두 실축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상대의 실축과 마노네의 선방이 이어졌다. 마르코스 알론소와 기성용이 성공하면서 2골을 넣었고, 마지막 하파엘의 슛을 마노네가 막아내면서 경기를 끝맺었다. 선더랜드는 19년만에 리그컵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사상 처음으로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기성용의 투지를 빼먹을 수 없다. 기성용은 오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장했다. 맨유의 공세가 거센 전반 분위기에서 그에게 많은 기회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수비적으로 많은 가담을 하면서 팀에 수비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캐터몰과 콜백이 그의 뒤를 받쳤지만 빌드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선더랜드 역시도 공격보다는 수비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위치나 역할을 변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점을 하고 나서, 기성용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연장전에 돌입하자 기성용의 볼터치 횟수가 늘어났다. 전후반에 볼을 평소보다 많이 잡지 못하면서 체력을 아껴둔 것이 전화위복이 된 상황이었다. 기성용은 미드필더 진영에서 볼을 잡고 좌우로 볼을 벌려주거나 혹은 본인이 직접 볼을 몰고 침투해 들어가면서 발이 묶인 상대 수비진을 위협했다. 기성용이 볼을 잡을 때 마다 가장 위협적인 찬스가 만들어 졌고, 그런 기성용을 막기 위해 기성용이 볼을 잡을 때면 앞에 두 세 선수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그 상황에서 기성용은 자신이 직접해결하기 보다는 동료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연장 후반 막판 기성용은 패널티박스 내에서 드리블을 하다 반대편에서 노마크상태로 있는 바슬리를 보았다. 바슬리에게 정확하게 연결된 볼은 중거리슛 찬스를 만들어 주었고, 그 슛은 골로 이어졌다. 데 헤아의 실수가 있었지만 기성용의 패스가 있기전에는 나오기 어려운 슛이었다. 기성용은 이 패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사우스햄튼전에서 체력이 많이 소모된 모습을 보이며 안타까움을 샀던 기성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중 경기에 출장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성용은 투지로 120분을 소화했고, 경기내내 안정적인 패스와 플레이메이킹은 물론이고 어시스트와 승부차기 결승골을 넣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 뛰었던 모든 선수들 가운데 마노네 골키퍼와 함께 가장 돋보인 플레이어였다. 결국 그의 발끝에서 선더랜드의 결승행이 시작되었다. 

맨유는 다시 한 번 패배하면서 정말 최악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퍼거슨 감독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뼈아픈 패배였다. 상대팀 선더랜드에는 존 오셔, 웨스 브라운 등 과거 영광의 주역들과 필 바슬리와 같은 유스 출신 선수들이 뛰고 있었기에 더욱 더 뼈아팠다. 내일쯤 후안 마타가 영입될 예정이라고 하니, 맨유가 전열을 재정비해 반격에 나설 그날을 기다려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