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완장' 손흥민, 클래스 보여준 70m 분노의 질주

Posted by Soccerplus
2014. 4. 21. 08:00 해외파 이야기/손흥민


늘 밝은 미소로 경기를 시작했던 손흥민이었지만 오늘 경기는 유달리 어두워보였다. 여전히 조국의 세월호 사고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눈치였다. 토요일 경기에서 김보경이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고, 일요일 경기에서는 손흥민이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왔다. 독일 분데스리가 중계진도 한국의 비극을 아는지 손흥민을 자주 클로즈업 시켜주었다. 이번 경기에서 골을 넣어서 우리나라에 꼭 좋은 소식을 알려주기를 바랬었다.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리그 시즌 4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그에서만 9골 4어시스트, 챔피언스리그와 컵대회 경기 기록까지 합치면 이번 시즌 11골 7어시스트의 좋은 기록을 세웠다. 18개의 공격포인트는 그가 특급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히피아 감독이 경질당한 뒤, 레버쿠젠은 레반도프스키 감독아래서 두번째 경기를 맞았다. 지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2연승을 노렸다. 후반기에 승점을 많이 까먹으면서 4위까지 빼앗긴 상황이었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지난주에 이어 볼프스부르크가 2연승을 거두면서 4위자리를 빼앗은 상황이었다. 이번 경기를 지면 5위로 밀려나면서 이번 시즌 계속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결연한 손흥민은 왼쪽 윙포워드로 선발출장했다. 팀의 선발 라인업중 공격수는 두명이었다. 키슬링이 중앙에 서고 율리안 브란트가 오른쪽 날개를 맡았다. 손흥민은 중앙 지향적인 움직임으로 지공시에는 윙어와 세컨스트라이커의 자리를 함께 맡았다. 레반도프스키 감독은 손흥민을 선발에, 그리고 류승우를 교체 명단에 올려놓으면서 두 한국 선수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레버쿠젠의 문제는 공격진보다 미드필더진에 많았다. 라스 벤더가 부상 이후 폼을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이 그를 보좌해야 하지만 미드필더에서 나오는 패스의 질이 현저하게 나빳다. 엠레 칸, 곤잘로 카스트로의 패스의 정확도가 무척이나 떨어졌다. 손흥민과 키슬링은 좋은 위치에서 볼을 받지 못했고, 이는 공격작업에서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전반전을 1:1로 마친 뒤,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보에니쉬가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기는 뉘른베르크 홈팬들이 열렬하게 응원을 하는 상황에서, 한골이라도 허용한다면 승점 1점에 만족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손흥민은 후반 종료 12분전,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받아 정확하게 트래핑 한뒤, 뉘른베르크 선수를 제친 뒤 왼발로 슛을 날렸다. 골이 유력한 슛이었지만 골키퍼 샤퍼의 선방에 막혔다. 아쉬운 상황도 잠시, 수비에 가담하던 손흥민에게 역습찬스가 왔다. 손흥민은 그대로 볼을 차고 달렸다. 따라오던 한 명의 수비수가 떨어져 나갔고, 그렇게 손흥민은 패널티 박스까지 70m이상을 치고 달렸다. 빠른 스피드에 수비수들은 태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골키퍼와 1:1로 맞서는 상황, 손흥민에게 왼발각도가 나왔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다라오던 스파이치에게 패스를 했다. 비어있는 골대에 볼을 밀어넣은 스파이치는 팀의 세번째 골을 기록했다. 

손흥민이 욕심을 부려도 상관없었던 상황이고, 오히려 욕심을 부려봄직한 상황이었다. 검은 완장까지 차고 나온 손흥민이 고국의 팬들을 위해 어떤 세레모니를 준비했을지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개인의 영광보다 팀의 승리를 우선시 하는 선수였다. 그만큼 팀의 승점 3점이 중요한 상황이었고, 손흥민은 그 상황에서 패스를 선택했다. 10호골은 무산되었지만 골보다 더 중요한 팀의 승리와 4번째 어시스트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4번째 골장면에서도 깊게 관여를 했다. 역습상황에서 동료 공격수들이 문전앞에 없었던 상황, 손흥민에게 볼이 왔고 수비수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기에 약 30m 거리에서 강력한 왼발 중거리슛을 시도했다. 강력하게 날아간 볼은 골키퍼가 잡아낼 수 없을정도로 강했고, 가까스로 쳐낸 볼은 수비수의 경합과정에서 힐베르트 발앞에 떨어졌다. 힐베르트는 이를 골로 연결하며 4:1 팀의 경기를 확실하게 매조지 지었다. 

손흥민의 70m 드리블은 그의 클래스를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유럽의 어떤 선수들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비수를 달고 빠른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 그리고 골욕심이 날 법한 상황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들어오는 동료를 위해 패스를 했다. 우리나라 선수지만 욕심이 있는 스타일인 손흥민에게 팀을 생각하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고, 마치 유럽 선수들의 스페셜 영상에서나 보던 분노의 질주를 우리나라 선수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3경기이다. 볼프스부르크와 경쟁을 하고 있는 레버쿠젠이다. 레버쿠젠은 다음 경기에서 도르트문트를 만나는 등, 일정이 볼프스부르크보다 좋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승점 1점 앞서있고,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한다면 챔스리그 진출권을 따낼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도르트문트 킬러 손흥민이 다시 날아오를 때가 온 것 같다. 다음 경기에서는 두 시즌 연속 두자리 연속골을 기록하며 특급 공격수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