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전 졸전, 저는 그래도 이팀을 응원하렵니다

Posted by Soccerplus
2014. 5. 29. 08:00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2월 런던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A매치 경기 이후 1년만에 A매치 경기를 찾았습니다. 이번 경기는 그때 경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죠. 지난 세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월드컵을 앞둔 국내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프랑스에게 2:3으로 패했던 2002년 이었지만 경기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2006년에는 보스니아를 상대로, 그리고 2010년에는 에콰도르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번 경기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베일속에 갇힌 우리나라의 전력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경기였고, 홍명보 감독이 몇일동안 조련을 잘했을 것이라, 그래서 조직력이 많이 올라왔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답답함 그자체였고, 결국 우리나라는 0:1 초라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정식은 패배라는 아픈 분위기 속에 진행되어야 했고, 팬들역시도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들이 출정식을 보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수비의 핵심자원인 홍정호 선수가 부상으로 나간 이후부터는 경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표팀의 브라질이 홍정호없이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0:1이라는 스코어에 실망할 여론과 그리고 이리저리 평가를 해댈 언론의 기사들에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쉴드를 쳐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주변 응원오신분들이 환호가 아닌 야유를 퍼부울만한 경기력이었고, 저역시도 한숨을 내쉴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이팀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출정식이 열렸고, 붉은 악마의 응원이 다시 거새졌습니다. 그리고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졸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갖고 남은 팬들의 열광적인 박수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4년전의 추억에 빠져들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반도가 하나가 되었던 그날, 온 국민이 16강전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던 그날이 생각이 났습니다. 늘 월드컵 뒤에는 잘못했다라기 보다는 그래도 수고했다라는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이 아깝지 않게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여 뛰어주었습니다. 

국가대표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천부적인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단 23명만이 참여할 수 있는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온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신화처럼 방송에 나돌 것입니다. 한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것만해도 대단한 영광이기에, 어쩌면 몇분 주어지지 않는 그 시간을 위해 인생을 달려왔던 선수들이기에 그들 한명한명에게는 우리보다 훨씬 더 특별한 대회 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언론의 보도와 광고들, 그리고 신화같은 스토리를 통해, 그리고 수십만의 거리 응원을 통해 이번 대회를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태극기를 휘감고, 다시 한 번 이 팀을 응원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달 뒤면 이팀의 열렬한 서포터가 되어 함께 울고 웃을 것을 알기에, 이 팀을 응원하렵니다. 

저는 이 팀이 아무리 5천만 국민의 염원과는 달리 평가전이라는 미명하에 정신력이 빠진 모습을 보여도 이팀을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명백한 중앙 수비의 실수로 한 점을 헌납했지만, 후반전 등장 장면에서 결의에 차기보단 가벼워보이는 웃음으로 등장을 해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왼손으로 해도 이 팀을 응원할 것입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진 못했지만, 출정식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객석을 채워준 팬들을 뒤로하고 승부를 낼 생각하지 않고 설렁설렁 뛰는 이 팀을 응원할 것입니다. 한 선수의 큰 부상이 다른 선수들의 투혼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신경질적인 경기로 이어지는 이 팀을 응원할 것입니다. 

애초에 예비명단 30명을 뽑았다면 이런 경기가 있지 않았겠지요. 단 1분의 시간이라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임했을 것입니다. 그리 보여준 것이 없었지만 홍명보 감독이 잘 아는 선수들로 뽑혔기에 선수들은 월드컵 엔트리에 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각 세대 대표팀마다 승승장구를 하며 성인 대표팀까지 올랐고, 유럽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태반입니다. 그 선수들이 4년전 주장처럼 태극 마크의 무게를 누구보다 무겁게 느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이 팀을 응원할 것입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 그리고 감독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작년, 박주호 선수가 A매치에서 제대로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때에는 다시는 보기 싫다며 밀어내더니, 오늘 윤석영 선수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자 다시 영웅 대접을 하고 나섰습니다. 이 팬들 가운데 과연 마인츠의 경기를 애정있게 본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그런 왼쪽 자리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매운 선수가 김진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후기엔 김진수 선수를 그리워하는 글이 아니라 박주호 선수를 그리워하는 글이 더욱 많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실력보다 '분데스리가'라는 무게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K리그의 이명주와 김승대라는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이기에 우리는 이들을 아쉬워 해야 했나요. 그 선수들의 경기를 본적이나 있으신가요. 중계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지난 여름 홍명보 감독이 처음 사령탑에 올랐을 때, 그리고 브라질, 러시아, 스위스, 말리전을 잘 치르고 나서 보여주었던 기대와 응원의 목소리는 어느새 쏙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강희 감독 시절보다 훨씬 더 나은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과거 감독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분들의 애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분들 역시도 저와 함께 한달간 이 팀을 응원하게 되겠지요. 

무슨일이 있든 저는 이 팀을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팀은 우리의 응원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월드컵이 높은 벽인 것을 알고 있고, 우리가 16강에 올라갈 확률보다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월드컵 역사상 16강은 단 두차례밖에 올라서지 못했지만, 우리의 월드컵 역사가 헛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경기마다 선수들의 투혼이 우리의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볼키핑, 무회전킥, 점유율 축구, 공간과 압박 모두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이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악착같은 투지때문이었습니다. 태극마크의 무게를 누구보다 무겁게 느끼고, 선수들의 자리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경기가 치러지는 90분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간절한 응원을 헛되이하지 않게 해주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