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대표팀, 우린 얼마나 떳떳합니까?

Posted by Soccerplus
2014. 6. 11. 08:00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 장면 1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 안해줄지도 모릅니다) 축구 방송을 해주는 공중파 방송사들. 하지만 이들 방송사들은 4년에 한번씩 닳고 닳은 이름표를 꺼내듭니다. 월드컵채널, 축구채널이라는 이름을 꺼내들며 월드컵 방송에 여념이 없습니다. 월드컵 모든 경기를 방송해주며, 경쟁이 거세진 이번에는 새로운 해설 위원도 영입하고 방송사마다 다큐멘터리와 중계진들의 예능 출전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가증스러운 방송사들의 행동에 열불이 나지만 월드컵이 시작하면 또 잠자코 중계를 보고 있습니다. 

# 장면 2

2002년 전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했던 붉은 악마.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서 응원을 할 정도로 축구로 하나가 되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월드컵 기간이 끝난 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4년뒤에 다시 만났고, 또 4년뒤에 다시만났죠. 그리고 4년 뒤, 한국 축구를 잊고 살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제각기 축구 전문가가 되어 다시 돌아아왔습니다. 4년전의 대표팀 경기력에 비할바가 되지 않는 현재 홍명보호를 보며, 실망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 장면 3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누군가 한 명에게 책임전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0년 월드컵에서 염기훈 선수가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2014년 대표팀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피해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간 대표팀을 맡았던 세 명의 감독은 물론이고, 거기에 이동국, 박주영, 기성용, 정성룡, 곽태휘, 이정수, 거기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좌우풀백들까지 듣지 말아야 할 말들까지 들었습니다. 축구가 스타플레이어들의 싸움이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팀플레이에서 매력을 갖고 있는 종목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손가락질을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말 잘 한경기에도 워스트를 뽑고, 내내 잘하다가 한 경기를 못하면 또 가루가 되도록 까야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간 축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길래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비판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까.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에만 나와서 '나는 이래서 축구 안봐', '얘네들 완전 못한다며'라고 흉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저의가 궁금합니다. 4년동안 축구 안봤으면, 월드컵에도 안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명단 23인을 발표하고 나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 적을 잘 보지 못했는데 이명주, 그리고 박주호 선수가 발탁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속상해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명주'라는 선수가 그렇게 유명한 선수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아, 물론 제가 처음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명주 선수가 그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큼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지요. K리그의 슈퍼스타이지만, 그리고 최고의 선수임이 틀림없지만 그 선수에 대한 관심도는 다른 유럽파 선수에 비해 미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몇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려도 언론은 물론이고 팬들은 관심없었습니다. 모두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말은 평소에 어떻게 뛰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무턱대고 반대를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주호 선수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정말 뛰어난 선수였지요. 풀백과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발군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하지만 박주호 선수가 허정무 감독 시절부터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에게 모두 부름을 받았던 선수인 것은 아시나요. 그리고 어떤 대표팀에서도 적응하지 못했고, 홍명보호에서는 러시아전에서 기회를 받았지만 '역시 김진수'라는 대답을 주었던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전 김진수 선수가 부상으로 낙마하고 박주호 선수가 합류하자 '신의 한수'라며 박수를 치고 나섰습니다. 최소한 국가대표팀에서 만큼은 김진수 선수가 박주호 선수보다 훨씬 더 나은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주전 선수를 잃었음에도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어제 가나전 4번째 골은 박주호 선수의 왼쪽이 완전히 농락당해서 허용한 골이었습니다. 수비하지 못한 기성용과 막지 못한 정성룡이 문제가 있었지만, 박주호의 패스미스로 부터 시작된 골이었습니다. 근데, 그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성룡에게 비난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아직 잘 모르는 유럽파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일까요. 아니면 특정 선수가 특별히 못나서였을까요.

2010년 정성룡 선수는 축구팬들의 복덩이이었습니다. 왜냐면, 이운재 선수를 워낙 몰아세웠기 때문이죠. 당시 대표팀은 이운재 vs정성룡 구도로 가고 있었는데, 젊고 신선해보이는 정성룡 선수에 대한 지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정성룡 선수는 우루과이전, 나이지리아 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골을 헌납했습니다. 그때는 '잘했다'는 말이 더 많았습니다. 누가봐도 골키퍼의 실수가 분명했음에도 이 예민한 한국팬들이 '이해'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잘못은 4년뒤인 지금에 와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넌센스인가요.  

박주영이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박주영의 대표팀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이었지요. 대표팀에는 최소 2명의 공격수가 필요합니다. 김신욱이 있고, 그 다음 들어올 선수가 없습니다. 팬들은 박주영에 대해 지적을 합니다. 그렇게 되묻습니다. 그럼 누가 들어가면 좋겠어? 라고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정말 아무도 들어갈 선수가 없습니다. 팬들은 김신욱 이전에 김동섭, 서동원, 조동건을 시험해보았다는 것은 모르나봅니다. 얼마나 답답했고, 박주영의 그리스전이 얼마나 큰 임팩트였는지. 무턱대고 박주영이 싫으니 싸잡아 욕을 하고, 그럼 누구?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 얼마나 책임감없는 행동입니까. 

수준이 떨어져서 K리그가 방송이 안되고, 그래서 관심이 없어진 것인지 관심이 없어져서 방송이 안된 것인지에 대한 순서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K리그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딱 2배만 많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처럼 K리그 출신 선수들이 괄시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명주가 조금 더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차두리가 주목을 더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이 두 선수가 대표팀 물망에 오른 것도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K리그 선수가 월드컵에 나와 부진한 활약을 펼치면 또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입니다. 

정작 집 근처에 있는 자신의 '홈'구장은 한번 찾아가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어렵사리 되는 중계는 볼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지구 반대편 유럽 축구는 밤을 새서라도 봅니다. 화려한 테크닉, 최고의 선수, 최고의 전략 그들에 비교되는 우리는 뭔가 모자라 보입니다. 밤을 새서 축구를 보는 사람들은 N사 인터넷 방송으로만 해도 십만명이 가볍게 넘는데, 정작 우리 대표팀이 A매치를 하면 경기장이 비어있습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축구를 이미 충분히 '체득'한 우리는 모두 전문가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엔 '붉은 악마'가 더 많을까요 '구너스', '콥' 들이 많을까요.

언젠가 부터 월드컵 16강은 밥먹듯이 올라가는 것이 되어버렸고, 스페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최강 상대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승부는 당연하고 기회가 되면 이길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팀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2002년 4강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2010년 월드컵이 역대 최강 멤버로 16강에 올랐는데 이제는 그 16강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을 예를 들며 일본 축협을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은 2010년 이후 자케로니 체제로 4년을 이어왔고, 지금 그 결실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산 자체가 3배나 많은 일본이고, 자케로니 4년을 기다린 일본입니다. 우리에게 자케로니같은 감독이 왔다면? 4년동안 한국 감독직을 이어오는 것이 순탄치 않았을 것입니다. 축협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축협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의 의견입니다. 이제와서 조광래 감독을 그리워하는 일, 최강희 감독을 그리워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그분들도 최악의 평을 듣고 물러나신 분들이니까요. 

지난 튀니지전은 꽤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아마도 인터넷에 과포화되어있는 팬들의 비난을 보았을 것입니다. 선수들이 돌파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오버래핑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봤습니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평생 축구하나만 바라본 선수들에게 월드컵이 그저 장난처럼 보일까요. 평생의 목표였습니다. 홍명보 감독에게도 이번 대회는 한국 축구 레전드로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입니다. 

많은 팬분들이 K리그를 서포팅하고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유럽파들의 경기를 챙겨보고, A매치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마치 월드컵 채널을 외치는 방송사처럼 평소에는 별관심도 없다가 전문가가 되어서 돌아오는 팬들의 비난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좋아하면 좋아한만큼 더 애정이 생겨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법. 과연 우리가 그렇게 떳떳한 사람들인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4:0으로 패한 대표팀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없습니다. 저역시도 이 경기에서 가장 실망한 사람 중 한 명이니까요. 홍명보 감독의 '인맥'도 비난하고 싶지는 않으나 최근 두 경기가 특히 좋지 못했습니다. 그리스전과 지금의 대표팀은 차원이 다른 팀이 되었습니다. 이 대표팀을 응원하러 브라질 원정을 계획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홍명보 감독이 지금의 전술을 아예 버리고 김신욱의 머리만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마치 나의 비난이 당연한 권리인양 행사하시는 분들에게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한국 축구를 봤길래, 그렇게 비난을 하십니까, 여러분들은 그렇게 떳떳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