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네덜란드 충격적 결과가 한국에 주는 교훈

Posted by Soccerplus
2014. 6. 14. 06:38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2006년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경기력이 기억이 난다. 비록 토너먼트에서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스페인의 조별 예선 경기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스페인이 주었던 충격은 당시 대회 처녀 출전이었던 우크라이나와의 대결이었는데, 셰브첸코가 버티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4:0 완승을 거뒀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처참하게 느껴질 정도로 스페인은 경기를 지배했고, 이 대표팀은 2년 뒤부터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를 호령하게 된다. 2008, 2012 유로와 2010년 월드컵을 우승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밤을 샌 많은 축구팬들을 놀라게 하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물론 상대는 지난 월드컵 준우승팀인 네덜란드였지만 5:1이라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5:1 경기의 승자가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라는 점은 더욱 더 충격적이다. 사비-부스케츠-이니에스타로 이어지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모두 나왔고, 거기에 실바와 알론소까지 미드필더에 가세하면서 스페인은 최강의 전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네덜란드는 로벤-스네이더-반 페르시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을 제외하고는 생소한 선수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네덜란드는 매우 잘 조직된 팀이었고 반 할 감독은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 두 팀의 대결에서 스페인이 더 나은 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페인은 지난 대회에서도 첫 경기에서 스위스에서 패했지만, 경기를 계속해서 압도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네덜란드에게 무려 10개의 유효슈팅을 내주고 5골을 실점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보면서 계속해서 우리나라 생각이 났다. 참으로 배울점이 많은 경기라고 생각한다. 

1. 단단한 수비, 이름값이 아니라 조직력으로 하는 것

네덜란드는 쓰리백을 들고 나왔다. 사실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축구의 주류 국가가 포백을 버리고 쓰리백을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블리르, 데 브리, 마르쿠스 인디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그리고 이 선수들은 피케와 라모스, 아즈필리쿠에타와 조르디 알바가 선발로 나선 포백보다 훨씬 더 단단했고 강력했다. 라모스와 피케가 뒷공간을 허용하며 대참사의 빌미가 되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 선수들은 서로 협력하며 디에고 코스타와 페르난도 토레스는 물론 창의적인 미드필더들의 전진 패스를 무력화시켰다. 

여기에 데 용과 데 구즈만, 얀마트, 블린트의 수비가담도 눈부셨다. 얀마트는 태클을 5차례, 그리고 4차례의 클리어를 완벽하게 해냈고 블린트와 데 용도 중요한 클리어를 해냈다. 스페인의 수비진에는 세계 최고라는 이름값이 있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두 선수의 호흡이 적절하지 않았다. 동선이 겹치고, 뒷공간을 서로 커버해주지 못하면서 결국 로번에게 치욕적인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나라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큰데, 선수들의 개인적인 역량보다 조직력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경기로 깨닫기를 바란다. 가나전에서의 4실점은 모두 수비조직력의 미스에서 나온 부분이었다. 수비진에서 실수가 나올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서로간의 파트너십이다. 

2. 축구는 패스 숫자와 패스 성공률로 결정나지 않는다

늘 그렇듯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2배에 가까운 패스(스페인 618:네덜란드 276)를 더 높은 성공률로 (스페인 87%: 네덜란드 81%)로 패스 관련 기록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반 할 감독은 극도로 계산적인 공격방법을 택했다. 쓰리백을 사용하면서 기존의 4-2-3-1 이나 4-1-3-2와 같이 4선을 놓기보다는 3-4-3 (혹은 3-4-1-2)으로 한 번에 공격진으로 넘어갈 수 있는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그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공격진과 수비진의 패스 연결고리가 단순해졌다. 미드필더의 기량은 떨어질수도 있지만 공격진은 강력하다는 것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5골은 이 단순한 공격에서 시작되었다. 첫 골도 블린트의 롱패스를 반 페르시가 마무리해준 것에서 비롯했고, 로번의 마지막 골도 한번의 패스로 결정이 나고 말았다. 스페인의 강력한 중원을 고려한 전략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미드필더 조직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그들과 정면승부를 할 필요는 없다. 박주영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김신욱을 이용해 한 번에 공격진으로 넘어가 손흥민과 이청용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3. 네덜란드를 빛낸 '노장의 힘'

월드컵, 유로의 단골 손님이지만 이제는 어느덧 노장이 된 네덜란드 3인방(스네이더, 반 페르시, 로번)이다. 그리고 이 세 선수들은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하며 한 번의 터치로 경기를 바꾸어 놓는 노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반 페르시의 첫번째 골이었는데, 뒤에서 넘어온 볼을 헤딩으로 골로 만드는 반 페르시의 노련함은 대단했다. 반 페르시의 골이 없었다면 후반전 소나기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로번도 스피드로 라모스를 압도하면서 쐐기골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노장들이 결정을 지어주니 뒤에 있는 젊은 선수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블린트는 최고의 월드컵 데뷔전을 가졌고, 데 브리도 월드컵 데뷔골을 넣었다. 노장들의 힘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반 페르시의 골을 보며 박주영이 생각이 났다. 박주영도 대표팀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선수이지만, 지난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침묵했다.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할 때 골을 넣어주는 것은 역시나 고참이다. 지난 대회에서 박지성-이영표가 보여주었던 존재감을 과연 박주영이 보여줄 수 있을까?

4. 축구는 이런 것이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한 번 삐끗하면 이렇게 대패를 하고 만다. 카시야스를 보면서 정성룡 생각이 났다. 카시야스는 오늘 몇 차례나 굴욕적인 순간을 견뎌야 했다. 네 번째 골은 본인의 명백한 실수이기도 했다. 천하의 카시야스도 실수를 한다. 그리고 천하의 스페인도 5골을 허용하기도 한다. 경기가 한 번 기울어지자 4골이 연속해서 터졌다. 수비진이 빈틈을 보이자 네덜란드 공격진들은 그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우리가 아는 스페인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래서 축구가 재미있고 또 무서운 법이다. 

최악의 분위기라지만 우리라고 네덜란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희망을 보지 못했지만 본선을 위한 강력한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러시아와의 일전을 잘 마친다면 이후 두 경기는 의외로 쉽게 풀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두 차례의 패배가 선수단을 응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것이 축구고 약자도 강자를 누를 수 있는 것이 축구다. 젊은 네덜란드가 패기로 세계 최강을 무너뜨렸다. 우리도 못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