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혼다 위에 나는 드록바 있었다 (일본 vs 코트디부아르)

Posted by Soccerplus
2014. 6. 15. 12:30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개인적으로 한 선수의 존재감이 경기를 지배했던 경기는 2013년 4월, 제가 직관했던 바르셀로나와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브라히모비치, 베컴, 이니에스타, 사비, 피케, 알베스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두 총집결했던 경기였지만 후반 10분 메시가 등장할 때까지 경기는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0:1로 뒤지고 있던 바르셀로나는 메시의 등장과 함께 엄청난 상승곡선을 그리며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메시가 등장하면서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수많은 스타틀레이어들은 메시의 존재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방금끝난 월드컵 D조 예선 코트디부아르와 일본의 경기는 한 선수의 존재감이 경기를 지배한 두 번째 경기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드록신! 드록바였습니다. 일본은 상당히 경기를 잘 풀고 있었고 수비진도 안정적으로 유지를 하고 있었지만 후반 30분을 남기고 들어간 드록바의 존재감은 이 선수들을 동요시켰습니다. 공격을 하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던 코트디부아르는 고삐를 잡아줄 드록바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두 골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번 경기를 위해 특별히 경기시간까지 뒤로 미룬 일본 국민들은 이 드록바앞에 지금쯤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드록바가 투입되기 전까지 이 경기의 주인공은 일본의 혼다 게이스케였습니다. 자국민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회가 끝난뒤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말로 승부욕을 불태웠던 혼다였죠. 혼다는 전반 16분 원더골을 집어넣으면서 일본의 리드를 이끌었습니다. 측면에서 온 패스를 한번의 터치로 각도를 만들고 골키퍼가 채 준비도 하기전에 왼발로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골키퍼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1:0, 혼다는 월드컵에서만 네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혼다가 골을 넣은 이후, 코트디부아르의 맹공이 이어졌습니다. 야야 투레, 제르비뉴, 윌프레드 보니, 살로몬 칼루를 중심으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두 차례의 좋은 프리킥 찬스는 아쉽게 골대를 넘어갔고, 제르비뉴와 칼루는 2%부족한 드리블로 상대의 거미줄 수비진에 볼을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중앙 수비는 상당히 불안해 보였지만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풀백이 지키는 양쪽 측면은 단단했습니다. 우치다는 골을 기록할 뻔 하기도 했고, 나가토모는 경기내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승기가 올랐고, 자케로니 감독은 하세베 마코토를 빼고 엔도를 넣으면서 수비진에서 볼을 돌리며 한번의 패스로 골을 넣기 위한 교체를 합니다. 여기까지도 아주 순조롭게 흘러갔습니다. 일본에게는. 코트디부아르 공격수들은 다리가 묶인 듯, 한 선수가 드리블하고 들어올 때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공격이 공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에서 끊기고 말았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후반 15분, 경기장에 선수가 아닌 신이 강림한 것이지요. 디디에 드록바, 이 선수가 들어오자마자 말입니다. 

사실,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드록바가 들어올 것인줄 알면서도 왠지 그를 믿지 못하고 저는 머리를 감으러 화장실에 갔습니다. 드록바가 예전만 못하다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불신을 드록바는 확실하게 깨뜨려주었습니다. 벌을 받은 것인지, 저는 이영표 위원의 샤우팅에 온바닥에 샴푸를 뚝뚝 흘리며 화장실을 뛰쳐나와야 했습니다. 

'드록바 효과'는 모든 경기장을 그야말로 지배했습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고, 특히 상대의 뒷공간을 파헤치고자 하는 공격진들의 움직임이 빛났습니다. 첫골도 이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경기내내 부실한 결정력으로 속을 태우던 윌프레드 보니가 오리예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했습니다. 일본 선수들이 오리예를 잡지 못했고, 허둥지둥한 상황에서 보니는 뒷공간을 노렸습니다. 드록바가 투입된지 4분만에 기록한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영험한'장면은 두번째 골에서 나옵니다. 

가운데의 드록바가 오른쪽 측면의 오리예가 비었다는 것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습니다. 볼을 잡은 코트디부아르 선수는 드록바의 지휘아래 오른쪽으로 패스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드록바는 오른쪽으로 공이 가자마자 안쪽으로 침투합니다. 그를 쉽게 내어둘 수 없는 일본의 두명의 중앙수비수는 그를 감싸기 위해 중앙으로 들어옵니다. 두 명의 센터백이 모두 그를 막아내려 들어왔고, 이 공간을 제르비뉴가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제르비뉴의 두번째 골이 터지고 맙니다. 

경기를 지배한 드록바의 위엄은 경기를 풀경기로 보신분들이면 더 똑똑히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드록바가 들어오자 순식간에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스타팅도 아닌 교체로 들어간 드록바, 36살의 백전노장은 그의 별명 '드록신'답게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한 선수가 경기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 정말 오래간만에 보았던 것 같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자국의 내전까지 휴전으로 만든 드록바는 자신의 경험을 한 경기에 녹아낸 듯 했습니다. 볼을 잡을 떄마다 여유가 넘쳤고, 자신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후반막판 시간을 끌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첫 월드컵을 나선 카가와 신지의 부진이 뼈아팠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카가와 신지였지만 경기는 이름값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창의 나이인 카가와 신지지만 자신보다 11살이 많은 드록바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큰 대회, 큰 경기에 나서는 각오가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혼다는 정말로 경기를 잘했고, 그가 볼을 잡을 때 마다 매우 무서운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그도 드록신 앞에선 하찮은 인간계 영웅에 불과했습니다. 혼다도 영웅이 될 수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30분간 최고의 모습을 보인 드록신의 강림을 기억할 것입니다. 

월드컵에서 일본의 경기는 우리의 승부욕을 자극시켜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2006년 호주가 일본을 눌렀을 때의 느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냉철하던 이영표 해설위원이 이렇게 애국해설을 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제 시나리오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3일 뒤, 우리나라가 웃는 것만 남았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씩 떨려옵니다. 태극전사의 선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