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1998년 벨기에전을 기억하라

Posted by Soccerplus
2014. 6. 26. 07:33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1998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프랑스 월드컵은 충격적이었다. 지단과 호나우두, 베르캄프와 수케르라는 스타 플레이어를 보기도 했지만 당시 세계축구와 한국축구의 수준차이를 알 수 있는 대회이기도 했다. 멕시코에게 1:3으로 패하면서 첫단추를 잘못 꿰었고, 네덜란드에게 0:5로 패하며 차범근 감독이 중도에 귀국을 해야했다. 두 경기에서 8골을 실점했다. 그리고 두 경기만에 목표였던 16강 진출은 실패했다. 감독이 경질되고 16강 진출은 일찌감치 없어진 마지막 벨기에전, 우리나라는 승부의 의지를 불태울만한 동기부여가 없었다. 

하지만 이 경기는 내가 본 축구 경기 가운데 가장 정신력이 빛나는 경기였다. 전반 초반 세트피스에서 실점을 했지만, 이후 90분까지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붉은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벨기에는 이번 경기를 승리하면 16강의 가능성이 있는 팀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투혼에 결국 16강 탈락을 하고 말았다. 유럽의 붉은 악마가 아시아의 붉은 악마에게 호되게 혼쭐이 난 경기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팀 주장은 홍명보였고, 벨기에의 주장은 마르크 빌모츠였다. 공교롭게도 두 주장은 16년 뒤 브라질에서 감독으로 만나게 되었다. 

16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수비수 이상헌과 이임생의 붕대투혼이었다. 두 선수는 경기중 격한 몸싸움에 머리를 다쳤지만 붕대를 감고 다시 나와 아픈 머리로 헤딩을 했다. 선수들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고 6월 프랑스의 더운 날씨에서도 90분 내내 악마처럼 뛰어다녔다. 우리나라가 '악마'라는 별명을 제대로 정립한 것이 바로 이 경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는 내일 새벽, 이번 대회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벨기에전을 남겨두고 있다. 16강 진출의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우리나라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벨기에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 경기를 펼쳐야 한다. 0:3으로 완전히 희망이없던 알제리전의 후반전, 우리나라 선수들은 정말로 원없이 뛰었다. 물론 결과가 아쉬웠지만, 후반 초중반까지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1 두 점차의 득점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벨기에전, 선발로 누가 나오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포커스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나오는가 보다는, 어떻게 하는가가 더욱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우리나라 선수들은 주어진 위치에서 120%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보다 더 많이 뛰고, 16강이 이미 확정된 상대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16강의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2점차 이상의 승리를 거둬야 한다. 빈센트 콤파니와 반 부이텐이 막고 있는 센터백라인을 상대로 어떻게 2골이상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의문보다는 우리는 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편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더 잘 알 고 있을 것이다. 이번 경기는 앞으로 4년 뒤까지 기억될 경기다. 1998년 벨기에전의 투혼은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2006년 스위스전의 아픔으로 4년을 견딘 뒤 16강의 위업을 달성했다. 2014년, 비록 우리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2018년 월드컵까지 이 결과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우리나라 선수들이 4년 뒤면 선수로서 더욱 더 완숙한 기량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이번 대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대회를 위해서라도 이번 경기를 의미있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승리가 엄청난 투지의 결과이길 바란다. 벨기에는 지난 두 경기 후반 중반 이후 골을 넣으며 승리를 얻었다. 벨기에가 강팀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못해볼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알제리전이 더욱 더 아쉽기는 하다. 마지막 손흥민의 PK가 선언되었다면 우리나라는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놔두고 고민했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알제리를 이기거나 두 팀이 비기면, 우리나라의 16강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그래도, 승리를 하고 다른 경기장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나올 때, 더 이상 힘이 없어서 걷지도 못할만큼 최선의 경기를 보여주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를 통해 '국민 왕따'가 된 선수들도 있지만, 그에 앞서 이들은 우리나라 국가 대표다. 국가 대표의 사명감을 갖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의 그 떨림을 90분간 보여주며 붉은 악마에 걸맞는 경기를 보여주고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