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브라질 월드컵의 유산'에 주목하자

Posted by Soccerplus
2014. 7. 1. 08:00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2014년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끝이 났다. 원정 첫 8강을 노린다는 호기로운 의지를 품고 떠났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거둔 성적은 1무 2패였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에 가까운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가운데, 우리나라 대표팀이 이길 수 있는 팀을 뽑기는 어렵다. 이란이나 아프리카 팀들이 그나마 해볼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팀들을 우리가 쉽게 이기기는 힘들다. 알제리는 처음 많은 아프리카국가들 가운데 약체로 평가되었지만, 그들은 16강에 진출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4:2로 패하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발전보다는 퇴보했다고 말한다. 2010년의 경기력에 비해 못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세계축구의 흐름에도 우리나라는 조금 더 멀어진 느낌이 든다. 미드필더와 공수조율이 쉽지 않았던 대회였고, 공격의 짜임새보다 역습의 위험에 대비해야했던 대회였다. 그렇게 길러냈던 홍명보의 아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부진한 활약을 했고, 홍명보가 믿었던 몇몇 선수들은 대표팀 부진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이번 대회에서 얻은 소득도 있다. 한가지는 바로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단연 눈에 띄는 선수였다.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임을 넘어서 월드컵 레벨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기량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25세밖에 되지 않는 선수들이 무엇보다 값진 경험을 얻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선수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중계'에 관한 것이다. 2010년 대회에서는 SBS가 독점 중계를 했었다. 차범근-배성재 위원의 중계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다른 경기들도 무리없이 중계를 잘 했었다. 이를 통해 SBS는 수준급의 중계진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축구는 SBS라는 이미지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는 세 채널이 다시 중계경쟁을 펼치며 흥미로운 전쟁을 벌였다. SBS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예상외로 KBS가 1위를, MBC가 2위를 차지했다. 얼마나 이번 대회를 많이 준비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대회에서 이영표 해설위원이 KBS에 합류하면서 제안한 조건이 눈에 띈다. 이영표 해설 위원은 KBS와의 계약 조건으로 다른 것을 언급하지 않고, 공중파에서 K리그 중계를 늘려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실제로 KBS의 K리그 중계는 시즌당 4경기에서 6경기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인트호벤과 수원삼성의 친선경기를 KBS가 중계했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중계 퀄리티는 그야말로 EPL저리가라였다. 헬리캠을 동원해서 선수들의 동선을 파악하기도 했고, 20대의 카메라가 경기장에 동원되며 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주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중계차를 갖고 있는 KBS가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면 이렇게도 중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기에 이번 대회의 최고의 스타인 이영표 위원의 영입을 통해 KBS가 다시 축구 중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기존의 한준희 위원과 더불어 이영표 위원이 해설 전면에 나선다면, KBS도 축구를 통해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분한 발음과 어투, 그리고 냉철한 분석력과 선수 경험까지 해설위원이 갖춰야할 많은 덕목을 갖춘 해설위원이다. 

야구 일변도의 스포츠 중계를 지향했던 엠비씨도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롭게 생각을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엠비씨는 이번 대회에서 안정환과 송종국이라는 훌륭한 해설자원을 얻게 되었다. 또한 김성주라는 캐스터와도 재회했다. 이 트리오의 조합은 상당히 들을만 했다. 매우 친숙한 느낌이 들었고,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해설을 해주었다. 

월드컵으로 이 방송사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가을에는 아시안 게임이 열린다. 월드컵 스타인 손흥민이 차출될 것으로 보이고 김진수, 김승대, 윤일록과 같은 스타 선수들이 참여하게 된다. 인천에서 열리는 대회이니만큼 축구에 대한 열기는 매우 뜨거울 것이다. 또한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은 그야말로 축구중계의 진검승부가 될 예정이다. 아시아 최강을 노리며 이번 대회에 우리나라가 올인을 할 것이 분명하기에 방송사들은 아시안컵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중계 기술과 중계진들을 확보한 방송사들은 K리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렇게 좋은 자원들을 계약만 해놓고 놀리는 것도 방송사에게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중계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K리그를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K리그 중계가 지금보다 두배만 더 많았어도 K리그의 스타인 이명주와 같은 선수들이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K리그에서의 스타가 대표팀의 스타가 될 수 없는 것도, K리그에서 아무리 활약을 해도 대표팀에서 못하면 금방 욕을 먹고 자신감을 잃기 떄문이다.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의 K리그 경기를 보았다면 팬들도 대표팀에서의 한 경기를 가지고 파악을 안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제대로된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낙마하는 이유는 방송사의 중계가 적은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브라질 월드컵은 우리에게 아픔만 준 것은 아니다. 분명히 남겨진 유산들이 있다. 나는 이 훌륭한 중계진과 중계 기술에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자원들을 바탕으로 더 많은 중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K리그를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