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리버풀 결별, 한 시대가 또 저물다

Posted by Soccerplus
2015. 1. 4. 07:30 해외 축구 리그 이야기




어젯 밤, 무한도전의 토토가를 보고 난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하다. 90년대를 정통으로 누렸던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흘러들었던 노래와 익숙한 얼굴들을 보면서 너무나 기쁘기도 했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최고의 가수들이 매주마다 1위를 다퉜던 그 시절, 그리고 수많은 전설들이 현역으로 가수 생활을 했던 한국 가요의 르네상스를 다시 바라보는 느낌이 묘했다. 

토토가, 이 예능 프로그램과 EPL의 한 축구 선수를 비교한 다는 것은 사실 조금 관련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제라드의 MLS 진출 소식을 들으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작년, 아니 벌써 재작년 박지성이 은퇴했을 때의 그 기분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해외에 나가서 최고의 활약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박지성이었다면 스티븐 제라드는 필자에게 또 다른 기념비적인 선수다. 2005년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뤄낸 장본인, 일본어로 된 <위닝일레븐>을 플스방에 가서 하면서 늘 리버풀과 잉글랜드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선수가 바로 스티븐 제라드다. 

리버풀은 그 우승 경력에 비해 국내팬들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 팬들의 유입요인은 바로 이 스티븐 제라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PL을 매주마다 보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지상파 MBC에서 새벽에 생중계를 해주던 챔피언스리그를 보며 해외축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박지성의 아인트호벤이 4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제라드의 리버풀과 카카의 밀란이 만났던 2005년 이스탄불의 기적을 생중계로 보면서 엄청난 희열에 찼다. 당시 만들었던 인터넷 사이트의 닉네임도 제라드, 제라드8 이런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빅 이어를 들었지만 EPL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한 제라드가 정말로 리그 우승을 한 차례도 해보지 못한 채 팀을 떠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당시에는 리버풀이 빅4에 꾸준히 드는 강팀이었고, 제라드를 중심으로 알론소, 키웰, 히피아, 루이스 가르시아, 그리고 베니테즈 감독이 팀을 지키고 있었다. 몇 년 뒤에는 제라드와 토레스가 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맨유와의 선두 경쟁에서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지난 시즌은 다잡았던 우승을 막판에 놓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수많은 이적설에서도 제라드는 리버풀을 지켰다. 7살때부터 리버풀의 유스팀에서 성장했던 제라드는 이후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원클럽맨으로 뛰었다. 첼시, 레알 마드리드 등 당대 최고의 팀들의 구애에도 제라드는 팀에 남았다. 오직 팀의 우승만을 생각하고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늘 영원할 것 같았던 스티븐 제라드는 이제 팀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프랭크 람파드나 데이비드 베컴처럼 임대 형식으로 유럽무대에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리버풀은 그가 아닌 새로운 주장을 선발해야하고, 그의 대체자원을 길러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 프랭크 람파드가 팀의 중심을 잡고 있던 빅4의 시대는 이제 해체되고 새로운 강자들이 리그에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모든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유일하게 팀을 지키고 있던 제라드는 여전히 과거의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한 캐릭터였다. 이제 그런 그가 팀을 떠난다고 한다니, 다시 한번 "end of an era"가 오는 느낌이다. 리버풀의 엄청난 팬도 아닌 필자가 이런 허전함을 느끼는데 현지팬들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이스탄불에서 빅이어를 흔들며 환호하던 제라드의 모습, 잉글랜드에서 등번호 4번을 들고 포르투갈과의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얼굴을 잔뜩 찡그리던 모습,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와의 결전에서 승리하며 팀원들을 독려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그가 함께 할 리버풀의 경기가 단 18경기밖에 남지 않았다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감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