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훈갑' 이정협-김진현, 슈틸리케 아니었다면

Posted by Soccerplus
2015. 1. 18. 01:59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호주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조금은 유리한 심판의 판정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앞선 두 경기에서 불안함을 노출하며 한 수 아래의 상대에게 위험천만한 승리를 했었지만 호주는 이 두 팀과의 경기에서 8골을 넣었다.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승부는 붙어봐야 아는 것이다. 우리는 확실한 승리는 아니지만 승점 3점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늪' 축구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그 어떤 팀도 우리나라를 상대로 섵불리 완승을 거두지 못한다. 상대가 어떤 팀이 되든지 우리나라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다. 상대도 이전에 보지 못한 실수를 거듭하게 되고, 우리 나라도 완벽한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많은 경기가 그래왔다. 특히 '늪' 느낌이 나는 잔디 상태가 좋지 않은 '원정' 경기장에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난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6경기동안 무실점을 하며 상대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이번 대회도 그 대회의 향기가 나는 듯 하다. 우리나라는 3경기 동안 무실점을 하며 A조 선두로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팀은 그야말로 악재가 겹쳤다. 원톱 후보였던 김신욱과 이동국이 대회 시작도 전부터 낙마했다. 거기에 대회 한 경기 만에 이청용이 부상으로 귀국했다. 지난 경기에선 손흥민, 구자철 등 주요 자원들이 감기 몸살로 경기장에 나오지도 못했고, 오늘 경기에선 구자철과 박주호가 부상으로 교체됐다. 좋지 않은 잔디 상황, 상대의 거친 플레이로 우리 나라의 부상 악령이 그 어느 대회보다 심한 상황이다. 너무 잘 뛰던 주전들의 체력관리가 지난 대회의 걱정이었다면, 이번 대회는 주전들이 대회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악조건을 물리치고 3승을 했다. 그리고 특히 어제 경기에서 골을 넣은 이정협과 골키퍼 김진현의 공이 컸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를 가장 큰 비중으로 이끌고 있는 선수가 기성용이라면, 그의 지휘를 따라 팀에 도움을 주는 두 선수들이다. 이정협은 이번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A매치 첫 선발 출장에서 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고, 김진현은 첫 경기 오만전에서 결정적인 세이브로 승점 3점을 만들었으며, 호주 전에서도 1:1 찬스를 두 차례나 막아내면서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두 선수는 슈틸리케의 작품이다. 이정협은 각 나이대 대표팀을 한번도 거치지 않고, 슈틸리케가 발품을 팔아 K리그에서 데려온 자원이다. 김진현도 월드컵의 3번째 골키퍼, 2011 아시안컵의 세번째 골키퍼로 대표팀에는 자주 오르내렸지만, 늘 정성룡, 김승규에 밀린 3번째 골키퍼였다. 사실 J리그에서 뛰고 대표팀에서도 보이지 않는 김진현이 계속해서 대표팀에 올라온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인 김봉수의 라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이정협과 김진현이 없었다면 승점 9점의 결과를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협은 데뷔골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대표팀에서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자원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기량에 대한 의심이 개인적으로는 있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믿음으로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정협은 그에 응답하고 있다. 물론 엄청난 개인기도, 탁월한 골결정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피지컬을 기반으로한 헌신적인 움직임은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호주를 상대로 넣은 그의 골은 그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진현의 경우는 더더욱 놀랍다.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는 늘 정성룡과 김승규의 대결이었다. 정성룡이 지난 감독들의 신뢰를 얻으며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김승규는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대표팀의 주전 골리의 정점을 찍는 활약을 했다. 정성룡과 비교되어 그의 활약은 더욱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 어떤 감독이 와도 대표팀의 주전 골리는 김승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길고 긴 주전 골키퍼사(史)에 전혀 게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주전 경쟁이 시작됐고, 그 상황에서 승자는 김진현이었다. 

슈틸리케가 없었다면 호주전 두 영웅의 탄생은 있었을까? 절대 가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해외파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K리그에 주목하고 한 선수 한 선수를 편견없이 바라보며 최고의 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폼이 떨어진 구자철에게 믿음을 보내고, 남태희라는 자원을 키워냈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아직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의 노력이 만든 결실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호주전을 통해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다시 차고 올라 베스트 멤버를 구성할 수 있는 8강에서 슈틸리케의 진짜 대표팀을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