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명승부, 우리가 한국축구에 열광하는 이유 (아시안컵 결승전 대한민국vs 호주)

Posted by Soccerplus
2015. 2. 1. 00:20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작년 6월, 우리는 큰 실망을 했었다. 알제리전 패배 이후 많은 비난 여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을 했던 경기는 알제리전이 아니라 벨기에전이였다. 벨기에를 꺾으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기고, 동시에 벨기에 선수가 전반에 퇴장당하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생겼다. 물론 3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16강 희망이 생기는 상황이었지만 그 상황에선 하나라도 해봐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1:0 패배를 했다. 10명이 싸운 벨기에를 상대로 이렇다할 찬스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네임 밸류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스타 군단에게 주눅든 경기를 했다. 

당시 1998년 벨기에전이 겹쳐보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지만 16강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펼친 우리나라 선수들의 투혼을 잊지 못한다. 이임생은 머리에 피가 나는 부상을 입었지만 의료진에게 빨리 붕대를 감아달라며 붕대투혼을 보였고, 김태영은 오른 무릎에 붕대를 감고 쥐가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우리나라를 이기면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벨기에는 우리나라에게 발목을 잡히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월드컵의 졸전은 축구팬들로 하여금 큰 실망과 함께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다. 황금세대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 축구가 우리 나라 특유의 투혼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경기를 본 팬들이라면 잠시나마 과거의 우리 나라 축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겨도 불만스러운 경기가 있는가 하면 져도 뿌듯하고 괜히 안쓰러운 경기가 있다. 아시안컵 초반에는 전자에 속했던 평가가 대회가 지날수록 후자로 바뀌어 갔다. 우리 나라가 갖고 있는 투지와 끈기가 보였고,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제 경기에서도 너무 아쉽게 패했지만 우리는 아쉬움보다 희망을 보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보자는 의지가 엿보인 경기였다. 

55년만의 우승이 눈앞에 있었지만 패했다. 홈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주전급의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고 말았다. 김신욱, 이동국이 없었고 이청용과 구자철이 중도하차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절망하지 않았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고 이정협이라는 대안을 찾았다. 2선 공격수들의 부상은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부담을 최소화했다. 한교원, 남태희, 이근호 같은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갔고, 이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경기력이 좋아졌다. 대회 시작 포백라인과 결승전의 포백라인은 3명이 다르다. 이런 큰 대회에서 수비라인을 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슈티리케는 변화와를 통해 안정을 꾀했다. 대표팀을 맡고 4개월밖에 되지 않은 감독이었다. 상대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동시에 우리 선수들에 대한 검증작업이 일어났다. 계속해서 로테이션을 기용한 조별예선과 달리 토너먼트에선 베스트 11을 확정지었다. 감독 슈틸리케의 역량도 대회를 거듭하며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결승전에서는 박주호의 왼쪽 기용을 시도했다. 상대를 분석하여 만들어낸 전략이었다. 매우 좋은 전략이었으며 실제로 우리는 호주를 압도했다. 결승전의 중요한 한 순간은 바로 루옹고의 골이 터진 장면이었다. 루옹고는 볼을 잡고 패스를 할 곳도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골키퍼의 위치를 살필 순간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때린 슛이 골로 들어가면서 이 경기의 양상이 완전히 변했다. 패하긴 했지만 슈틸리케의 전술은 매우 좋았다. 전반전에 골을 실점하지 않았다면 후반전 한골 승부에서 우리가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박주호와 차두리에 풀백의 오버래핑은 거의 볼 수 없었고, 대표팀 은퇴경기를 갖는 팀 케이힐은 곽태휘에게 완벽하게 틀어막혔다. 

후반 종료 직전 손흥민의 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백미 중 백미였다. 김신욱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훨씬 더 쉬운 경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 막판 한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는 내보낼 카드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곽태휘를 전방에 올렸고, 결국 이 선택은 손흥민의 골로 이어지게 된다. 연장전에도 끝나지 않았다. 장현수의 다리에 쥐가 나면서 사실상 10명이 싸웠지만 우리는 김영권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곽태휘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사용하며 승부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어느 팀에게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 그게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 축구다.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도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선수들 사이에 서게 되었다. 또한 하나의 결과를 내기 위해 11명의 선수들, 그리고 벤치의 12명의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똘똘뭉쳐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시안컵에서 트로피를 얻어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잃어버렸던 한국 축구를 다시 되찾았다. 정말 잘했다. 최선을 다한 선수단에게 정말 가슴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아시안컵이 한국축구의 부흥에 큰 교두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