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브라질 넝쿨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했다

Posted by Soccerplus
2015. 2. 2. 02:55 대표팀/월드컵 이야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명단이 발표되는 날, 적지 않은 선수들의 만감이 교차했다. 명단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떨어지기도 했고, 의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브라질은 여러 선수들에게 아픔을 준 대회였다.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하거나, 혹은 부상으로 벤치를 지키거나, 아니면 명단에 합류했지만 경기에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의 명단에 문제가 있었음은 결과로도 보여진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실력에 기반한 선발을 선언했다. 과거 의리 논란에 휩쌓였던 대표팀의 문제를 잘 아는듯 했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라질에서 아픔을 겪었던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와 맹활약했다. 차두리, 곽태휘, 박주호, 김진수, 남태희는 여러가지 이유로 브라질에서 뛰지 못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보란듯이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의 부름을 받아 맹활약했다. 차두리, 남태희는 애초에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박주호와 곽태휘는 명단에는 들었지만 벤치만 달궜다. 또한 김진수는 주전 출장이 유력시 되었지만 대회를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다. (김진현도 제3골키퍼로 선발되어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지만 당시는 지금의 컨디션과는 많이 달랐던 선수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다섯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했다. 차두리는 은퇴 대회에서 더할 나위 없는 활약을 했고, 김진수는 향후 10년을 책임질 풀백으로 성장했다. 당시 1군 경기를 뛰지 못하던 윤석영에 밀려 대표팀에 제외되었다가 이후 다시 합류한 박주호는 전술의 키였다. 기성용의 파트너로 활약하다가 결승전에서는 왼쪽 윙포워드로 기용되었다. 윤석영의 서브 자원이었던 6개월전과는 상황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것이다. 남태희도 이청용의 서브자원으로 선발이 유력시 되었지만 김보경에게 밀려 제외되었고, 이번 대회에서는 1골을 포함해 토너먼트에서 모두 선발로 출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브라질은 참 아쉬운 대회였다. 지금의 멤버에 구자철과 이청용, 김신욱이 더해진 상황이라면 그렇게 쉽게 밀려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술적으로도 미흡했지만,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선수들이 경쟁하게 만들고, 그 상황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이끌어 냈어야 했다. 기성용 옆에 한국영을 파트너로 투입시켰지만 다른 선수들도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박주호는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보여주며 중앙을 꿰찼고, 그러면서 김진수와 공존이 가능했다. 선수들의 잠재능력을 최고로 올린 감독의 능력이었다. 

차두리는 은퇴했지만 마지막 국제 대회에서 정말 원없이 달렸다. 본인의 국가 대표 인생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두 번이나 만들어냈다. 또한 곽태휘도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공격수로 뛰며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곽태휘도 언제까지 대표팀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표팀에서 이렇게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다. 최강희 감독 시절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곽태휘는 여론의 뭇매를 많이 맞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대표팀을 향한 열정과 의지를 보여주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허정무 감독 시절부터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에게 모두 부름을 받은 바 있었던 박주호는 드디어 대표팀에 자리를 잡았다. 늘 왼쪽 풀백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이제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김진수와 남태희도 이젠 대표팀에 자리를 잡고 꾸준히 부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이 다섯 선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표팀에 선발되거나 선발 가능한 자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이는 대한민국 축구 전체의 문제였다. 홍명보 감독이 K리그를 두고 B급 리그라는 발언을 하면서,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동기 부여 자체가 떨어졌다. 이는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우리나 나라 축구의 중심을 잡아야 할 K리그를 괄시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선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홍명보 감독과는 다른 행보를 택했다. K리그 클래식은 물론 챌린지와 대학 U리그까지 선수를 찾아보겠다는 말을 했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정협은 그 결과물이었다. 

브라질에서 넝쿨에 빠진 우리나라 축구를 건저내고 있다. 물론 아직 보완할 점도 많고, 우리 나라 축구가 부족한 점도 많지만 긍정적인 면을 훨씬 더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 특별한 커리어가 없는 슈틸리케에게도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의 강한 의지와 의지있는 리더를 갈망했던 대한민국 축구는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참 다행이다. 축구에선 늘 위기뒤에 기회가 찾아온다. 앞으로 우리 축구에도 더 큰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