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능을 본 친구들에게

Posted by Soccerplus
2011. 11. 11. 07:00 텔레비젼 이야기/세상 이야기
19년 혹은 20년,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시간, 항상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었던 세대들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는 시간, 온 매스컴이 내가 본 것에 대해 떠들고, 나를 위해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모든 주위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그 시간이기에 수능은 모든 고3에게는 혹은 재수생 삼수생, 그 이상에게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19년 혹은 20년 그 이상의 시간들을 되돌아 보게 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고, 부모님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이 먼저 울컥하는 시간, 그렇기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바로 대학 수학 능력시험을 보는 그 시간들일 것이다.

축구블로거인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매우 뜬금없고,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읽어주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어제 수능을 보고 힘들어 하는 수험생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제각기 다른 학교, 다른 학원,  다른 공부방법을 택한 우리들을 일렬로 순서지어주는 시험이 바로 수능이다. 그것으로 대학을 가고, 그것으로 내 유년, 청소년기를 평가한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대부분 환영받고, 공부를 못하는 애들은 걱정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한 그런 간판을 단 학교에 다닌다. 이 간판을 달기위해, 나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너무나 고된 시간이었고, 자존심도 상하는 시간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추고 나오는 길, 유달리 멀었던 집과 시험장사이의 지하철에서 혼자 고개 숙이고 많은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고,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도 부모님을 보자마자 터져나오는 눈물에 온 가족을 눈물바다로 만든적도 있었다.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나와 친구들이 드는 생각은 '내 인생 망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던 나의 학창시절이 그냥 수포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고, 앞으로 나의 인생이 너무나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도대체 내가 상상하던 나의 인생 중 절대로 살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을 살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무섭다. 학교에 가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친구들보다, 운이 좋았던 한 두놈의 친구들만 보게 된다. 실력대로 본 친구들은 조금 더 잘보고 싶은 아쉬움에, 실력보다 못 본친구들은 그보다 더 큰 아쉬움과 슬픔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로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은 한결같다. 수능이 다가 아니라고,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거라고.

이 거짓말 같은 말, 수능이 다가 아니라는 말, 나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20대 중반을 살아고 있는 나는 이 말이 왜 지금에서야 와닿는지 너무나 아쉽고 한심하기만 하다. 너는 명문대를 다니니까 그렇지라고 반문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이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수능, 그건 정말로 별게 아니었다.

사실 수능은 우리가 앞으로 볼 많은 선택과 시험가운데, 가장 공평한 축에 속한다. 모든 이들이 똑같은 12년의 교육을 받고, 모든 이들이 같은 범위와 같은 시험지로, 같은 시간에 시험을 보는 것. 이렇게 공평하게 우리의 실력을 평가해주는 것은 앞으로 어떤 시험을 봐도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집의 형편이 좋아 더 좋은 선생님께 더 좋은 과외를 받으면 성적이 더 좋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 뿐더러, 내주위에는 그런 것 없이도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아이들이 많다. 더러는 머리가 좋아서 잘봤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수능은 충분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주변에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먼저 생각을 해봐야지, 나보다 더 조금 공부한 애가 더 잘본 것을 탓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게 20대 중반을 살아가는 내가 느낀 인생이다.

대학교의 간판이 너무나도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만 들어가면 모든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히 한다. 아니 모두가 그런생각을 한다. 아니, 대학을 와서 더 많은 고민과 힘든 점들이 많아졌다. 도대체 여기저기서 온 처음 본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도 고등학교같지 않고, 내 친구들과 내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것만 같다. 신입생 한달을 술로 쩔어서 보내고 나면, 바로 중간고사가 엄습하고, 이놈의 학점이란 건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방학이 되면 1학년부터 스펙을 쌓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엄습하고, 원하지도 않는 대외활동에 끌려다니는 친구들도 많다. 남들은 어학연수도 가려고 영어공부를 하는데, 나는 영어도 못하고, 남자들은 군대에, 여자들은 취업과 스펙에, 더러는 연애에 너무나 힘들어 한다. 도대체 취업이란 놈은 내가 어느위치에 서있는 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게 잘하는 건지, 수능같이 점수로 되어있으면 차라리 노력이라도 할텐데, 뭐 그런 생각들이 든다.

수능을 못본 내 친구가 대학교에 가서 열심히 노력해 해외 교환학생을 가고 유명한 기업에 인턴쉽을 하고 있는 모습, 아예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공부를 시작한 친구가 유명한 시상식에 상장을 받고 있는 모습, 고등학교 때 나보다 훨씬 공부를 못하는 내 친구가 난 아직도 군인인데 벌써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 모습, 인생은 생각보다 선택의 기로가 많다. 모든 선택에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모든 친구들이 자신의 점수보다 기준을 조금은 높게 설정하기에 그들의 수능은 항상 고달프다. 그리고 조금 덜 힘든 팁을 주자면 절대 나의 점수를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상대적인 동물이기에 너무나 힘든 일이겠지만, 누가 몇등급이고 누가 몇등급이고 하는 것들, 나하고는 아무 의미도 상관도 없다. 그냥 내가 이점수로 어디를 어떻게 가야겠다. 그리고 수시는 이곳을 써서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더 생산적인 일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남들과 비교를 하며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불과 몇년이 안되서 그 점수는 몇배로 뒤집어 지는 것이 다반사다.

나는 20대 중반의 대학생이고, 아직 사회에 둥지를 틀지도 못했다. 하지만, 수능을 못봤다고 아파하는 마음의 크기가 실제로 각각의 인생에서 받는 영향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은 이제 알것같다. 20살, 인생을 24시간으로 따지면 아직 동도 트기 전의 나이, 그저 악몽을 꾼 정도라고 생각해도 정말 무방하다. 아니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정말로, 그 나이에 그 시간대에 느껴야 될 아픔을 느끼며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능의 아픔은 너무나도 큰 것을 알고, 때로는 인생에 두고 두고 상처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악몽을 꿨다고 해서 내가 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듯, 조금 께림칙한 아침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오히려 악몽을 꿔서 남들보다 더 이른 아침을 맞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악몽을 꿨다고 하루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듯, 친구들이 수능을 못봤다고 인생이 어긋나는게 아니다!

이제 20년의 인생을 살고 앞으로 수십년의 인생이 망할 것임을 걱정하는 것보다, 20년동안 남들과 똑같은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키워주시고 아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표시를 하고, 남들보다 더 빠른, 더 현명한 시작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옳은 일 아닐까? 모든 수험생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매년 수능시즌만 되면 짠해지는 이기분, 분명 나도 느꼈던 바가 커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