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안정환, 그가 가장 빛났던 5가지 순간

Posted by Soccerplus
2012. 1. 28. 08:00 축구이야기
'반지의 제왕', '한국의 마지막 환타지스타'라고 칭송받았으며, 우리나라의 역대 공격수계보에 이름을 올릴 주인공인 안정환선수가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의 에이전트사에 따르면 31일 정식 은퇴를 발표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2002년 월드컵의 최고의 히어로이자, 명실상부한 200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인 그의 은퇴에서 너무나 아쉬우면서도, 흘러가는 세월이 너무나 빠르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발 뒤꿈치로 공을 살짝 쳐낸뒤 전광석화같은 터닝슛은 그의 전매특허였죠. 큰 체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운동능력이 좋다고 말할수도 없는 선수였지만, 워낙 테크닉이 좋았던 공격수인 그는 공을 잡을 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판타지스타'였습니다. 전형적인 센터포워드보다는 조금 아래의 위치에서 뛰었던 그는 상대 수비가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가 예상치 못한 슛타이밍으로 멋진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날린 칩슛은 대표팀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로 여겨질 마스터피스였죠. 그런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5가지 순간을 기억해보며, 대한민국의 레전드의 은퇴를 기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 같습니다.

1. 1999년, 그가 만든 K리그 돌풍



98월드컵의 결과는 처참했지만 월드컵이 몰고온 K리그 열풍은 대단했습니다. 98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었던 고종수와 이동국과 함께 안정환선수는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K리그에 오빠부대 열풍을 만들었죠. 99년 특급용병 마니치, 뚜레와 함께 부산 대우 로얄즈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그해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습니다.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죠. 그 활약을 통해 대표팀에도 발탁되었고 유럽진출에도 성공할 수 있었죠. 당시 축구의 불모지나 같았던 K리그에서 세계 최고의 리그인 세리에A로 직행.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죠.

2. 세리에 A시절




당시 국가대표팀 경험이 전혀 없었던 안정환 선수는 대표팀 경험없이 해외 진출한 유일무이한 선수였습니다. 그 기량을 그만큼 높게 샀다는 것이죠. 이적한 첫 시즌 등번호 8번을 받았고, 초반에는 벤치를 달궜습니다만 시즌 후반기부터 기량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세계최고의 구단이었던 유벤투스를 상대로한 경기에서 MOM을 기록하기도 하였고, 우디네세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했습니다. 당시 유일한 해외파였던 안정환의 활약상은 스포츠뉴스로 유럽축구를 접해야 했던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였습니다. 다음 시즌 등번호 10번을 받으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는 듯 했습니다만, 부산과 페루자의 분쟁, 그리고 월드컵 이태리전 결승전 이후 페루자 구단주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인해 날개를 접어야만 했습니다. 

3. 2002년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전




축제의 장이었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평가전을 우리는 뇌리에서 지울수가 없습니다. 여러 경기중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펼쳤던 선전도 좋은 기억이었지만 당시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던 유럽팀을 완파했던 스코틀랜드와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후반전 교체되어 들어오자마자 중거리슛으로 골을 넣었던 안정환 선수는 경기가 끝나기 직전 골키퍼를 넘기는 칩샷으로 월드컵 4강 신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골은 해외많은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4. 2002년 월드컵

이천수, 박지성, 설기현과같은 2002년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대 초반의 유망주로 포텐셜을 보여주었죠. 그리고 이 성장기에 있던 어린 공격수들과 가장 큰 시너지효과를 보여주었던 것은 전성기의 나이에 있었던 안정환선수였죠. 당시 26세, 그는 새로운 에이스들이 용틀임을 하고 있을 때 이미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빅리거였습니다. 대표팀 공격수들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에이스였고, 조별예선 2번째 미국과의 경기에서 동점골,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16강 이탈리아전 결승골을 넣으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환상적인 터닝슛을 여러번 보여주었고, 그의 축구 센스를 세계에 널리 알렸던 대회였습니다. 

5. 2006년 월드컵


그에게 2번째 월드컵이었던 독일 월드컵에서 그의 역할은 조커였습니다. 아드보카트감독은 수비를 우선시하는 롱볼축구를 구사했고, 신체적 조건이 좋았떤 조재진이 중용되었죠. 하지만 그는 후반전 교체투입되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어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토고전 교체투입되어 멋진 중거리슛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원정 첫승을 이끌었습니다. 답답한 수비만 계속했던 프랑스전에서도 교체투입되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안정환이라는 존재는 우리나라의 전술적 키였죠. 그가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독일월드컵 16강진출의 희망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마지막 월드컵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대표팀에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은 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축구팬들은 우루과이전 마지막 찬스가 이동국선수가 아닌 안정환에게 왔다면이라는 아쉬운 가정을 하죠. 그만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는 공격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만약 그가 요즘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공격수였다면, 주말마다 우리나라 팬들이 밤을 새며 보게 하는 유럽 빅리그의 선수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가진 테크닉은 정말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으니 말이죠. 그에게 최적화된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팀으로 이적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는 조금 더 성공한 해외생활을 했을 수 있을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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