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브첸코, '영웅'보다 빛났던 '레전드'
우리나라시간으로 새벽1시에 열렸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대결은 두 국가간의 앙숙관계를 떠나 축구종주국과 뢰블뢰군단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계축구계에서 약간은 뒤로 물러난 듯한 느낌을 받는 두팀의 대결이었지만, 오늘 D조경기의 메인경기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에 비해 우크라이나와 스웨덴의 대결은 조별예선 8경기간운데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기중에 하나였죠.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기대했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대결은 너무나 답답한가운데 경기가 끝났습니다. 양쪽이 한골씩을 주고받긴 했지만, 우리나 EPL이나 라리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의 활약이 너무나 무뎠고, 특히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지 못한 실망스러운 경기였습니다. 연속된 유로경기로 새벽잠을 자지못했던 저였지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셰브첸코의 신구AC밀란 포워드의 대결을 보기위해 졸린 눈을 비볐습니다.
스웨덴이야 메이저대회의 단골손님이고 현재의 이브라히모비치 이전에도 라르손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었기에 팬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팀입니다. 우크라이나 역시도 그에 견줄만한 스트라이커가 있었으니, 바로 한 때 무결점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린 안드레이 셰브첸코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대회를 개최한 개최국입니다. 폴란드는 상대적으로 체코, 러시아, 그리스를 만나 강호들을 피해갈 수 있었던 운이 따른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잉글랜드, 프랑스, 스웨덴을 한조로 불러들이면서 조별예선 통과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의 분리이후 2006년 월드컵이 첫번째 메이저 대회였고, 이번 유로2012가 두번째 메이저대회이자 첫번째 유로대회였습니다. 23명의 명단중에 8명이 2006년 멤버였고, 오늘 나온 선발 명단 가운데에서도 셰브첸코이외에 보로닌, 티모슈크, 나자렌코, 후셰프가 자리를 지켰고, 밀렙스키와 로텐은 교체로 출장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 그 전성기였던 안드레이 셰브첸코를 보면서 제 주변의 축구팬들은 도대체 '어느시절 셰브첸코야'라고 비웃음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셰브첸코를 앞세웠던 지난 두개의 메이저대회에서 우크라이나는 본선무대에 올라서지도 못했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이제는 대표팀을 떠나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올해나이로 35세의 셰브첸코는 이미 3년전 첼시로부터 방출을 당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대회를 앞두고 은퇴할 것이라는 발표를 하면서, 그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했습니다. 16개국 368명의 선수들가운데 1995년 국가대표에 데뷔한 그보다 더 많은 대표팀경력을 가진 선수는 없습니다.
조별예선 1라운드 8경기중 마지막 경기였고 그가운데에서도 국내팬들에게는 상당히 관심이 덜한 경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좋아하는 EPL에서 뛰는 선수가 없는 우크라이나의 경기였고, 경기시간도 3시 45분의 경기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늘 펼쳐진 이 두 국가의 경기는 어제열렸던 이태리와 스페인의 경기만큼이나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이브라히모비치와 라르손, 엘름, 토이보넨등을 앞세운 스웨덴의 공격과 오랫동안 발을 맞췄고, 셰브첸코라는 시대의 영웅이 자리잡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선수구성을 따져본다면 단연 스웨덴의 우위로 경기가 펼쳐져야 했지만, 홈관중들의 힘을 등에 엎은 우크라이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슛팅숫자 13:12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 점유율도 53:47로 대등한 경기였습니다. 주도권을 어느 팀도 완전히 가져오지 않은 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습니다. 스웨덴은 이브라히모비치의 무게감이 빛났고, 우크라이나는 선수들의 조직력이 좋았죠. 전반전은 두 팀도 골을 넣치 못한채 끝이 났습니다. 셰브첸코는 전반전에는 그리 빛날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후반전, 두 팀은 더욱 더 이를 갈고 나왔는지 더 빠른 경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선제골을 넣은팀은 스웨덴이었는데, 후반 7분, 킴 칼스트롬의 크로스를 깔끔하게 마무리지으면서 스웨덴이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AC밀란의 현재의 영웅이 과거의 영웅에게 먼저 잽을 날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웅이라는 이름보다는 레전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셰브첸코의 진가는 그때부터 나왔습니다. 정확히 3분뒤, 셰브첸코는 역습찬스에서 야르몰렌코의 크로스가 날아오자 수비수앞으로 번개같이 자리를 잡으며 헤딩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전반전 내내 좋은 찬스를 만들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였습니다만, 셰브첸코의 한방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었죠.
셰브첸코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반 16분, 예르헨 코노플리안카의 크로스패스를 뒤로돌아가는 움직임으로 귀신같이 들어갔고, 다시한번 머리에 맞춰 역전을 이끌어냈습니다. 한경기의 활약상 자체가 전성기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두골의 위치선정과 그의 움직임은 세계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시절 그대로였습니다. 후반막판 스웨덴은 동점을 위해서 엄청나게 몰아쳤고, 찬스도 두어번 얻어냈습니다만, 우크라이나는 이를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승리를 거뒀습니다.
'폼은 하락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의 축구 격언을 떠오르지 않을래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한 판이었습니다. 지난 두차례의 메이저대회진출 실패의 아픔을 완전히 날린 셰브첸코의 마지막 비상이 정말로 놀랍고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02년 월드컵 우리나라의 황선홍선수가 생각나게 하는 한판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D조역시도 혼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프랑스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우크라이나와 스웨덴의 다음 경기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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