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vs우크라이나, 호지슨축구의 힘을 보다

Posted by Soccerplus
2012. 6. 20. 09:48 축구이야기

 

잉글랜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팀입니다. 세계 최고 인프라의 축구 시설과 그에 응당한 최고 수준의 리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메이저 대회에만 나가면 힘을 내지 못합니다. 여기저기서 많은 징크스들이 발을 잡고, 주요대회앞에서 핵심선수들의 부상이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지난 유로 2008에는 예선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죠. 그런 잉글랜드에는 파비우 카펠로나 스벤 고란 에릭손과 같은 명성을 떨치는 세계적인 감독이 앉아있었습니다만, 늘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잉글랜드는 로이 호지슨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호지슨 감독의 선임은 기대반, 걱정반의 결정이었습니다. 약팀을 다루는데에는 정말 큰 재주가 있는 호지슨 감독이었습니다만, 리버풀을 맡으면서 보여주었던 최악의 결과는 이번 결정에도 의문부호를 따라다니게 하는 것이었죠. 준비기간은 한달여로 굉장히 짧았고, 핵심선수로 내정했던 몇몇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했으며, 유로 일주일전까지도 퍼디난드의 차출여부를 두고도 파장이 일었습니다. 내우외환이라고 하는 말이 맞겠죠. 호지슨 감독은 장점도 많은 감독임은 분명하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개최국 우크라이나를 꺾으면서 D조 1위로 유로2012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우크라이나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경기를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힘든 프랑스전을 무승부로 끝냈고, 메이저대회 징크스를 갖고 있던 스웨덴을 3:2로 물리쳤으며, 개최국 우크라이나마저 물리치면서 이번 대회에서 이변아닌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늘 수치상의 전력은 상당히 강한 팀이었던 잉글랜드였습니다만, 이번 대회도 큰 기대를 하는 팬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호지슨 감독이 다른 역대 잉글랜드 감독과 달랐던 것은 잉글랜드 대표팀을 바라보는 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팀 잉글랜드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호지슨 감독은 잉글랜드를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늘 딜레마였던 램파드와 제라드의 공존과 같은 것을 떠나, 수비 블록을 두텁게 쌓는데 치중을 했습니다. 수비시에는 최소 6명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한 9명의 선수들이 수비벽을 쌓으면서, 상대팀에게 선수비 후역습의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주도권을 내어주었지만 절대로 위험한 지역에서 슛을 허용하지 않았고, 내용보다는 결과로 보여주는 축구를 했습니다.

물론 잉글랜드도 칼을 아예 들지 않고 방패만 들고 나선 것은 아니었죠. 다만 1, 2차전에는 공격의 핵심인 루니가 없었기에 조금 더 수비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고, 캐롤과 웰백, 그리고 슈퍼서브 월콧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마련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제라드의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한 세트피스는 잉글랜드에게 가장 큰 무기였죠.

오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가지 수치상으로 잉글랜드는 우크라이나에게 모두 밀리는 경기를 했습니다. 슛팅 숫자 갯수는 7:14로 2배차이가 낫고, 점유율 43:57, 코너킥 6:10, 패스성공률 81:85, 패스 숫자 321: 453의 어려운 경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날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잉글랜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고, 존 테리, 스티븐 제라드, 웨인 루니, 애쉴리 콜과 같이 경험많은 선수들이 있었던 잉글랜드는 선제골을 넣은 후 효율적인 경기운영을 펼쳤습니다.

상당히 운이 따르는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지난 월드컵 16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램파드의 중거리슛이 골라인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로 인정되지 않아 대패를 당하는데 큰 빌미를 제공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후반 마르코 데비치의 슛이 골라인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골을 선언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루니의 첫번째 골에서도 운은 상당히 따라 주었는데, 제라드의 크로스가 수비수에게 두번 맞고 굴절되면서 골키퍼가 예측을 못하는 지점으로 흘렀고, 루니는 빈 골대에 볼을 넣어 선제골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잉글랜드의 그간 메이저 대회와 오늘 경기의 연관성을 모르고 경기를 보았다면 상당히 지루한 경기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잉글랜드는 수비에 치중했고, 우크라이나가 그런 수비 블록을 효율적으로 뚫어내지 못하는 지루한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지슨의 축구는 다소 지루하고 힘든 경기를 치루더라도 결과로 말하는 축구였습니다. 잉글랜드에게 위협적인 경기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결과가 더 중요한 상황에서 호지슨은 큰 결단을 내렸고, 그 결과는 2승 1무의 좋은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첫번째, 두번째 경기는 루니가 없는 상황에서 1승1무를 얻어냈고, 웰백, 캐롤, 월콧이 빛났던 스웨덴전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남을 명경기가 될 것입니다.

어제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보면서도 지루함을 느낀 것은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잉글랜드는 다릅니다. 최강자의 입장에서 소극적인 경기를 펼친 스페인과, 강팀의 탈을 벗은 잉글랜드가 수비에 치중하며 승리를 따낸 것은 그 차원이 다른 지루함입니다. 지루했지만, 결과가 기다려지는 잉글랜드였습니다. 스페인의 경기는 늘 쉴새없는 패스플레이로 이어졌습니다만, 지루하고 소극적인 경기는 팬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하는 모양이군요.

잉글랜드는 순식간에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8강에서 이태리를 만나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가 되는데, 아주리군단의 수비벽과 맞붙는 잉글랜드의 실리축구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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