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2, 스페인의 왕위 대관식이 시작되다
결국 유로 2012의 우승컵은 스페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조별예선 첫경기부터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며 힘든 시작을 했습니다만, 스페인식 제로톱이 경기를 치루면 치룰수록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4:0으로 누르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은 메이저 3개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하였고, 다음 브라질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뽑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와 기자들은 스페인의 이러한 최강의 입지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데에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국리그인 라리가의 자원들은 넘쳐나고 있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체제에서도 다른 팀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갖추며 대표팀에 개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자주 모습을 보지 못했거나 아예 전력에서 제외가된 요렌테나 하비 에르난데스, 후안 마타와 같은 선수들도 월드클래스를 자랑하고, 피케와 라모스의 센터백라인은 6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허용했습니다. 주축 선수들이 모두 20대 중반의 비교적 어린 나이기에, 다음 월드컵을 떠나 다다음 월드컵까지도 이 대단한 전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합니다.
3개의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석권한 스페인도 그 중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비 에르난데스였죠. 스페인 특유의 패스플레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이자, 스페인의 1차 패스줄기인 알론소와 부스케츠와 마지막 패스줄기인 이니에스타와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를 이어주는 중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경기당 90퍼센트 이상의 패스성공률을 유지하고, 공간을 파고드는 선수의 발앞에 넣어주는 스루패스와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는 그야말로 핵심중의 핵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죠. 키핑과 탈압박까지 뛰어나고 좋은 위치에서 패스를 받기 위한 움직임은 그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12시즌 중후반부터, 사비의 체력저하는 바르셀로나에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1980년 1월생인 그의 나이는 32세, 하지만 그의 역할을 수행할 선수는 없기에 체력적인 안배없이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7월부터 오늘까지 사비가 출전한 경기는 정확히 70경기였고, 그중 대부분을 선발로 나섰습니다. 라리가, 챔피언스리그, 국왕컵에 대표팀에서도 핵심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그에게 체력적인 문제는 필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1-2012시즌 바르셀로나는 리그 우승에도, 챔피언스리그 제패에도 실패를 했고, 그 이유에는 비야의 공백도 있지만 사비의 체력저하라는 요인도 있습니다. 물론 매경기 100개를 상회하는 패스에 90%이상의 성공률을 여전히 찍어주시는 괴물인 것은 여전하지만, 사비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확실히 제한적으로 변했습니다. 사비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따라올자가 없습니다만, 공을 잡는 위치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부스케츠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좀 더 강화하고 사비에게 좀 더 공격적인 단순한 롤을 맡기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사비에게 패스가 오는 것은 전술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사비는 여전히 패스 숫자 1위를 기록했습니다. 6경기에서 600개가 넘는 패스를 뿌린 사비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죠. 하지만, 스페인은 마지막 경기를 제외하고 이번대회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탄탄한 미들진에 실점을 허용하지않았을 뿐, 공격에서는 답답함을 끊어버릴수가 없었죠. 그리고 그 큰 이유에는 사비의 부진이 있었죠. 패스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패스를 받아주는 사비의 위치, 그리고 패스를 내어줄때의 사비의 위치는 분명 전성기보다는 쳐져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위기라고 말할 수 있었던 4강 포르투갈전에서는 사비는 120분을 소화하지 못하고 교체가 되었고, 그가 교체되어 나오자 연장전에서 스페인은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도권을 가져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최강 스페인에서도 그 중심의 자리를 갖고 있던 마에스트로 사비의 입지와 위치가 이제는 서서히 내려감을 알려주는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비의 대표팀에서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한 선수의 왕좌등극을 알려주는 대회이기도 했죠. 바로 이번 대회의 MVP로 선정된 이니에스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역할과 플레이스타일은 물론 다릅니다. 사비가 좀 더 쳐진 위치에서 앞으로 전진을 하는 패스, 그리고 경기를 주도하는 패스메이커의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면, 이니에스타는 좀 더 넓은 포지션에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패스실력만 놓고 본다면 사비에게 뒤질지도 모르지만, 이니에스타는 패스와 드리블, 시야와 창조성을 갖춘 최고의 선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 공을 잡을 때 마다 긴장감을 갖게 하는 선수였죠. 세스크, 실바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스페인에서도 단연 에이스였습니다.
이니에스타는 이번 대회에서 주로 좌측면에 배치가 되어 중앙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계속될수록 이니에스타는 점점 더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사비의 역할을 어느정도 분담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니에스타는 중요한 어시스트와 골, 패스를 해내면서 답답했던 스페인의 물꼬를 터줬죠. 이번 대회에서 그의 존재감은 사비 그 이상이었고, 메이저 대회에서 그 존재감이 사비를 넘어선 유일한 대회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당연시여겨질 것이고 말이죠.
세계 최강 스페인의 '대관식'은 이번 대회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한 곳에 모인 팀에도 그 중심과 에이스는 존재해야하는 법, 지금까지는 사비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만, 이제는 그 역할이 이니에스타의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월드컵에는 사비가 34세로 지금보다 더 줄어든 움직임을 보여줄지도 모르나, 여전히 스페인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있는 것은, 이니에스타라는 또 다른 에이스가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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