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고 안타까웠던 맨유vsQPR 직관후기

Posted by Soccerplus
2013. 2. 24. 07:58 유럽 축구 여행 이야기


이 곳 영국에와서 4경기째 축구를 보았습니다. 첫경기는 웨스트햄과 스완지의 경기였고, 다음 경기는 국가대표팀의 크로아티아전 평가전, 그리고 아스날과 블랙번의 FA컵 5라운드였습니다. 그리고 맨유와 QPR의 경기, 저는 너무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를 블로거의 길로 이끈 것이 '맨유와 박지성'이기에 이 둘의 재회는 저에게도 큰 떨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경기 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윤석영선수의 데뷔경기가 될수도 있던 경기였고, 카가와와의 한일대결이 될 수도 있는 경기였습니다만 저의 생각은 오직 박지성에게 쏠려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로프터스 로드에 일본인들이 너무 많길래 얘들이 왜왔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카가와가 맨유에 있다는 사실을 저도 모르게 까먹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박지성 선수가 오늘 선발로 나온다는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선발이 아니더라도  교체로라도 나오기를 기대했고, 교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많은 부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만 경기장에 입장하기전부터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경기장 앞에서 맨유의 버스를 기다리는 일본인들 앞에서, 무언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었는데, 한국에서 온 제가 우스워보였는지 하염없이 웃더군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 그렇게 느꼈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고 카가와가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선수가 선발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우 슬펐죠. 몸을 풀때부터 무언가 가슴이 짠했습니다. 박지성은 불과 몇달전만해도 당연히 저 반대편에 있어야할 선수인데, 이런 말도안되는 팀으로 이적을 한 뒤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퍼거슨이 직접 박지성에게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저의 자리에서 멀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친구들이 메신저를 통해 알려주어서 현지에 있던 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집에 돌아와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잠시전 경기장에서 느꼈던 짠한 기분이 다시한번 올라오더군요. 박지성선수에게 힘이 될까 싶어서 태극기를 가져갔는데 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도 주변 QPR팬들에게 눈치가 보였습니다. 박지성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원에서 그라네로와 스테판 음비아가 상대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좋지 못한 플레이를 하자, 박지성 선수와 저메인 제나스가 워밍업을 시작했습니다. 박지성선수를 분명히 중앙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하파엘의 중거리슛으로 골을 허용하자, 박지성과 제나스가 벤치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레미, 라이트 필립스가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박지성을 공격쪽으로는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하프타임이 시작하자 벤치멤버였던 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에 나와서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맨유가 먼저 그라운드에 나왔고, 하프라인 너머있던 박지성 선수는 그렇게 경기에 임하러 들어가는 맨유 선수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세계 최고의 팀의 선수에서 이제 강등을 앞둔 최약체의 후보 선수가 되었습니다. 나니가 박지성 선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장면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래사진은 멀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박지성과 경기에 후반전을 준비하는 맨유 선수들이빈다. 

후반전에도 QPR은 답답한 경기를 계속했습니다. 타랍의 이해안되는 플레이도 계속되었고, 스테판 음비아의 패스미스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타랍의 드리블에 QPR관중들은 환호했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었죠. 결국 호일렛과 제나스, 그리고 레미가 경기에 들어가고 박지성 선수는 7년간 뛰었던 친정팀과의 경기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멀리에서 벤치에 앉아 기분이 좋지 않을 박지성 선수를 생각하니 더욱 더 씁쓸했습니다. 경기는 그렇게 2:0으로 끝났습니다. 

이 곳 QPR 팬들이 무슨 죄인가 싶기도 합니다. 강등이 확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렬하게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불화를 겪었던 조세 보싱와에게는 야유를 퍼부었고, 경기내내 패스미스와 불안한 플레이를 보였던 스테판 음비아에게도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유달리 공격이 답답한 이번 시즌에서, 한두번의 찬스도 이들을 설레게 합니다. 심지어 타랍의 의미없는 중거리슛에도 박수를 건네더군요. 

이런 팀에서 박지성 선수가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감독이 점찍어둔 몇몇 선수들에 대한 편애가 선수 라인업이나 교체 카드에서도 눈에 보였습니다. 음비아, 마키, 타랍, 클린트 힐, 삼바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발명단에 빠지기는 힘들 듯 보입니다. 그리고 박지성 선수는 안타깝지만 레드납 감독하에서는 앞을 내다보기 힘듭니다. 

박지성 선수의 얘기에서 떠나 오늘 경기의 직관소감을 말해보자면, QPR팬들은 제가 본 어느 경기의 팬들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북같은 도구를 이용해 응원하는 모습에서는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다녀본 영국구장에서 북을 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즌 다이빙으로 패널티킥을 얻어냈던 애쉴리 영에게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상대편 선수들에게는 어김없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특히 팀에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안톤 퍼디난드의 형인 리오 퍼디난드에게 욕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반 페르시에게는 'YOU WON'T SCORE ON ANFIELD'라며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박지성 선수를 떠나 이들의 응원만 생각해보자면 어떤 팀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주차장 앞에서 박지성 선수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불찰로 인해 QPR선수들이 나오는 출구가 아닌 맨유선수들이 나오는 출구에서 기다렸습니다. 어쩐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싶었습니다. 덕분에 세계적인 선수들을 많이 봤습니다만, 아쉽게도 박지성 선수에게 사인을 받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영웅과도 같은 박지성 선수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맨유와의 경기는 이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배가시켰습니다. 과거의 동료들앞에서, 과거의 감독앞에서 주전으로도 나오지 못하는 박지성 선수의 현실이 너무나 속상하고 씁쓸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꼭 QPR을 탈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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