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하나로 웸블리의 스타가 되다 (스완지VS브래드포드 직관기)

Posted by Soccerplus
2013. 2. 25. 09:03 유럽 축구 여행 이야기

어제는 박지성 선수의 씁쓸한 모습을 직접보고와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친정팀을 만나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안좋더군요.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영국생활 약 한 달째, 축구경기를 5번 보았는데 그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지금껏 4경기를 보았는데, 4경기에서 4전 4패 0득점으로 제가 응원하는 팀이 모두 졌습니다. 가히 저주라고 해도 믿을 법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저의 5번째 경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5:0의 대승을 거뒀고, 매우 훈훈한 대접까지 받았습니다. 영국에와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4부리그팀이 결승까지 올라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만, 브래드포드팬들은 또하나의 기적을 꿈꿨습니다. 4부리그팀의 리그컵 우승, 영국축구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완지도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100시즌째를 맞는 스완지역사에서 한번도 메이저대회 우승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00년만에 기회가 왔습니다. 유로파리그 출전권도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경기 시작전부터 응원열기가 정말 매우 뜨거웠습니다. 경기는 당연히 매진이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시작전부터 줄을이었습니다. 웸블리 파크 역에서부터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약 500m의 거리가 있는데, 그 모든 자리를 사람들이 가득채웠습니다. 제가 태극기를 들고 가자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냐며 기성용을 응원하러 왔냐며 알아봐주었습니다. 어제 QPR의 홈구장이었던 로프터스 로드에서와는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자신도 함께 찍자며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성용 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꼬마아이도 보입니다. 혹시 스완지시티 경기를 보러가시거든, 태극기를 들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태극기를 들고 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봐주고, 기성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물론 칭찬 일색입니다. 

경기 30분 전부터 많은 관중이 들어차 있습니다. 주관사인 캐피탈원에서 양쪽 서포터즈들에게 깃발을 나눠주어 모든 관중들이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68000석의 웸블리가 하얀색과 노란색으로 나뉘면서 멋진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역시 결승전이다 보니, 두 팀의 응원열기도, 그리고 팬들의 긴장감도 다른 경기와는 달랐습니다. 

저의 옆자리에는 스완지에서 원정을 온 한 아저씨가 앉았습니다. 가자마자 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으며, 기성용을 보러왔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저씨가 반색을 하며 좋아하시더군요. 기성용은 물론 좋은 플레이어고, 자신에게는 미추와 브리튼이 최고의 플레이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 선발명단에서 기성용 선수가 수비수 자리에 있는 것을 보자, 자신은 기성용이 미드필더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합니다.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며 걱정을 합니다. 상대는 공중볼을 이용해 롱볼축구를 구사할 것이고, 기성용과 애쉴리 윌리엄스가 그것을 잘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치코는 리그에서 최고의 수비수라며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상대가 프리킥을 얻자 'That's what exactly they want'라며 걱정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브래드포드의 캡틴이 스완지 시티에서 뛰었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실력은 별로라며 엄지손가락을 바닥으로 향하더군요. 

스완지팬들의 환대속에 저는 태극기를 둘러메고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기성용 선수는 수비수로 출전하였고, 동시에 빌드업의 시작과정을 맡았습니다. 당연히 기성용 선수가 공을 많이 잡을 수 밖에 없었죠. 주변의 웨일즈팬들은 기성용선수가 좋은 플레이를 보일때마다 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굿플레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경기가 생각보다 쉽게 풀리면서 스완지팬들에게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반전 15분만에 다이어가 골을 넣었고, 종료직전 미추가 또 골을 넣었습니다. 전반전에만 2:0이었고, 경기내용도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기성용이 훌륭한 인터셉트를 기록하면서 공격의 시발점을 장식했습니다. 골은 들어갔고, 경기는 사실상 종료가 되었습니다. 

경기를 보면서 즐거웠던 점은 골을 넣을 때마다 격해지는 스완지 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첫골을 넣자 주변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더니, 두번째 골을 넣자 포옹을 했습니다. 세번째 골부터는 광란이었습니다. 저는 이곳 영국에 온지 한달만에 웨일즈아저씨의 볼뽀뽀를 받았습니다. 기성용의 인터셉트부터 시작된 골이라 유독 저를 꼭 끌어안더니 흥을 참지못하고 볼을 탐하더군요. 어렸을 적,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뽀뽀를 해주실 때 느꼈던 그 까끌까끌한 턱수염의 느낌을 웨일즈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턱수염의 규모나 강도가 훨씬 더 강했습니다만, 이들의 즐거움을 느끼며 저도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4번째 골과정에서 다이어가 해트트릭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패널티킥을 차려고 떼를 썼습니다. 꽤나 먼거리였지만 다이어의 짜증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죠. 스완지 팬들은 다이어의 짜증을 귀여워하며 다이어가 패널티킥을 차라며 다이어!다이어!를 연호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감명받았던 점은 스완지에게도 있었지만, 브래드포드에게도 있었습니다. 이번 컵대회에서 선방쇼를 이어간 골키퍼의 퇴장장면에서도 브래드포드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4부리그 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준 이 골키퍼는 팬들의 성원에 박수로 화답하며 쓸쓸히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4:0이 되었지만 브래드포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깃발을 쉴새없이 흔들며 브래드포드가 한골이라도 넣어주기를 바랬습니다. 이 곳 웸블리까지 온 것 자체가 엄청난 업적이라는 것을 아는 브래드포드팬들은 비록 경기는 졌습니다만 끝까지 경기장을 떠나지 않으며 자신의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브래드포드의 열광적인 응원과, 이번 컵대회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활약에 스완지팬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훈훈한 장면이었고, 영국의 축구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경기는 5:0으로 끝났고, 스완지의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었습니다. 팬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뛰지 못한 치코의 이름을 응원하기도 하고 미추의 응원가인 'HE SCORES WHEN HE WANTS'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주변 스완지팬들의 축하가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온 선수 덕분에 이번 시즌과 리그컵을 잘 치뤘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태극기만 하나 들고 있었을 뿐인데, 이들은 기성용과 한국을 모두 알아봅니다. 한국인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기성용 선수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기성용이라면서 자신도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팬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빌려주었죠. 

스완지 선수들도 창단 첫 우승에 매우 감격한 모습이었습니다. 치코가 투우 세레머니를 하면서 팬들에과 교감을 나눴습니다. 계속해서 투우를 하자 옆에있던 라우틀리지가 치코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선수들이 그 둘을 덮치면서 우리나라의 '햄버거 놀이'와 같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팬들은 다음 경기를 안 할 것이냐며 걱정이 앞섰습니다. 

선수들과 함께 팬들의 환호에 박수를 보내며 경기장을 돌던 기성용 선수에게 제가 열광적으로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저는 2층 구석에 있어서 잘 안보일까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기성용 선수가 멀리서 저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주변에는 온통 외국인 뿐이었기에 분명히 태극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었죠. 

저 역시도 흥이 나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태극기를 둘러매고 있었습니다. 많은 스완지팬들이 저의 태극기를 보며 키를 응원하러 왔냐며 축하한다고 잘왔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웨일즈 국기를 갖고 있던 팬들이 저에게 사진을 찍기를 요청하기도 했고, 꼬마아이들도 키를 좋아한다며 저를 매우 환대해주었습니다. 

저는 스완지팬들에게 꼭 태극기를 들고 스완지를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 잊지 못할 경기장에서 떠나왔습니다. 영국생활 한달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마치 영웅이 된듯한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입니다. 아니 아마도 앞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불과 몇시간 전에 제게 벌어졌던 일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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