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극장의 주인공, 호날두 (맨유vs레알 직관후기)

Posted by Soccerplus
2013. 3. 6. 10:27 유럽 축구 여행 이야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클럽의 만남을 보기 위해 사실 크나큰 출혈과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10년전 두 팀의 대결에서 후반중반 베컴의 등장하면서 엄청나게 떨렸던 그 기분을 잊지 못합니다. 챔피언스리그 조추첨이 되자마자 표를 수소문했습니다. 표가격이 생각보다 비쌋고, 고민하면서 구매를 차일피일미루다가 두 팀의 경기가격은 약 100만원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이 곳에서 2달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돈이기에 주저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영국현지의 '중고나라'같은 곳을 알아냈고, 정말로 운이좋게 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표를 구하고 아침 6시반에 일어나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약 6시간을 달려 숙소에 짐을 풀고 올드트래포드로 나서는 길은 생각보다 떨렸습니다. 맨체스터에 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뒤에 타던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자신의 응원가를 부르며 맨유 팬들에게 심리전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에 내리자 이 곳은 축구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얼마전 이름 붙여진 알렉스 퍼거슨 스탠드, 그의 포스터가 정말 멋있게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올드트래포드에는 카가와가 참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이 곳에 와보니 느끼는 생각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이 정말 세계적인 구단이라는 것인데, 아시아 계통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중에는 노르웨이나 북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시아 사람중에 대부분이 일본인이고, 나머지는 중국 대지주의 아들들처럼 보였습니다. 작년시즌까지 이 곳에 한국인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아쉬웠습니다. 카가와의 유니폼은 일본뿐아니라 현지인들도 심심치않게 입고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호날두였습니다. 3년 6개월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세계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던 호날두는, 본인에게 애증을 느끼는 홈팬들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10년만에 다시만난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기에 호날두에게는 어쩌면 커리어에서 마지막으로 올드트래포드 피치를 밟게 되는 경기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맨체스터의 팬들은 호날두의 마킹이 새겨진 예전 유니폼을 입으며 그와의 추억을 되새겼습니다. 

선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합니다. 선수들이 나오고, 선발 명단이 발표됩니다. 제 옆에 있던 현지팬은 루니가 없음에 놀랍니다. 루니가 선발명단에 없고, 웰백이 있다며 걱정이 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에 대한 견제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있던 일본팬들은 침울해졌습니다. 

긱스는 이번 경기에서 맨유에서 1000번째 경기 출장기록을 세웠습니다. EPL에 단 세명밖에 없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도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점점 회춘해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경기에 앞서 선발 명단을 발표하는데, 단 2명의 선수의 이름에 '부연설명'을 추가되었습니다. 한명은 긱스입니다. 1000번째 경기에 출장하니 그럴만도 하죠. 그리고 다른 한명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입니다. 번호대로 발표하는 원정팀의 선발명단에서 분명 7번이 발표되지 않아 호날두가 선발로 나오지 않나싶었습니다만, 가장 마지막에 'Welcome home'이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이야기와 함께 호날두가 소개됩니다. 그리고 관중들은 그에게 환호를 합니다. 

오늘 경기에 나선 두 팀의 전술입니다. 위의 사진은 맨유가 골킥을 찰때이고 아래의 사진은 레알 마드리드가 골킥을 찰때입니다. 맨유는 공격시 양쪽사이드를 넓게벌려 상대의 압박을 피하려합니다. 긱스와 나니가 선발로 나온 이유도 이 측면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중앙에 자신이있고, 공격에도 중앙지향적인 선수들이 즐비하기에 이렇게 중앙에 밀집해 수비를 세웁니다. 


퍼거슨감독은 호날두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했습니다. 하파엘의 오버래핑을 사전에 줄이기 위해 좌측 공격을 주로 시도했습니다. 우측에 긱스를 기용한 이유도 호날두에 대한 방어와 연관이 없지 않습니다. 거기에 반 페르시를 중앙에 놓기도 하다가 동시에 우측에 놓으면서 상대풀백인 코엔트랑의 오버래핑을 사전에 방어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해외 축구를 관람하다보면, 사실 현지인과 동화되기는 힘듭니다. 그들의 응원가는 알아듣기도 힘들고, 그게 누구를 위한 응원가인지도 모르겠고, 욕을 하긴하는데 왜하는지 모를때도 많습니다. 저는 경기를 보고 후기를 남겨야 겠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관람을하기에 더욱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정말 맨체스터 팬의 입장이 되어서 100%집중을 했습니다. 후반전, 골을 넣고, 역전을 당하고 후반전 중후반 캐릭과 루니의 결정적인 찬스가 무산될때에도 현지팬들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처럼 제가 현지인에 동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맨유 팬들의 응원매너가 너무나 인상깊었기 때문입니다. 호날두가 프리킥을 찰때에는 야유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상대방에게 하는 통상적인 야유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홈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로 각별했습니다. 퇴장으로 무척이나 분해하는 나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경기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100:101, 혹은 100:99정도의 승부가 이어졌습니다만 나니의 퇴장으로 인해 승부가 순식간에 기울었습니다. 그 빈틈을 노린 무리뉴감독의 승리였습니다. 아참, 평소에 심판판정에 불만이 많은 무리뉴에게 맨유팬들이 'Sit down Mourinho'라며 노래를 부르며 놀리더군요. 레알에게 5분만에 2실점을 하고, 경기가 사실상 어려운상황에 있음에도 맨유팬들은 계속해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격려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골을 허용하자마자, 바로 더 잘하라며 응원하는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경기가 끝나고 레알마드리드가 8강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맨유는 16강에서 탈락했죠. 경기가 종료되었지만 늘상보던 다른 경기와의 분위기와는 달랐습니다. 팬들이 집에 바로 가지않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호날두였죠. 이제보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호날두를 위해 홈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날두가 경기장을 빠져나갈때까지 홈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호날두는 박수로 화답했고, 영국에 와서 가장 따뜻한 순간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너무나 기다렸던 경기였고, 양팀의 공방전도 재미있었습니다만, 경기가 끝난 뒤 맨유팬들의 매너에 감탄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팬들이 더 심한 반응을 보이는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에오는 트램에서도 팬들은 좋은 경기였다며 서로를 위로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잘했다며 리그와 FA컵에 전념하자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나니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맨유와 같은 세계적인 빅클럽을 서포트할만한 자격이 있는 팬들이었습니다. 리그 19회 우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갖고 있는 맨유라는 클럽의 서포터들의 수준은 이정도였습니다. 스포츠 그 이상을 즐기는 느낌이었고, 이들이 축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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