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 훈련장서 직접만난 퍼거슨에게 깜짝놀란 이유

Posted by Soccerplus
2013. 3. 8. 08:30 축구이야기


이 곳 영국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만, 축구팬이라면 한번쯤 와보고 싶은 곳이 바로 맨체스터일 것입니다. 영국축구의 중심으로, 그리고 그를 넘어 세계축구의 거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죠.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는 그 별명도 ‘Theater of dream’입니다. 꿈의 극장이라는 뜻이죠. 이곳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맨유선수들의 경기를 본다는 것은 맨유팬들뿐만아니라 축구팬들에게는 큰 꿈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 해외축구가 지금처럼 대중화가 되지 않았고, 단지 스포츠뉴스의 한 꼭지나 FIFA99 같은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이 너무나 멋졌습니다. ‘Solskjaer’가 솔샤르인지 솔스크제어인지 ‘Schmichel’이 슈마이켈인지 스크미켈인지도 몰랐을 시절부터 무언가 마음에 드는 클럽이었습니다. 그런 클럽에 박지성이 들어갔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팬들이 양산되었죠. 상암구장에 ‘Here is another Old Trafford’라는 웃을래야 웃을 수 없는 현수막이 걸렸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기장에서 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았습니다. 10년전 축구황제 호나우두가 맨체스터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그 경기이후 10년만에 온 올드트래포드 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기는 지난 화요일에 끝났고, 그 경기를 100%즐겼습니다. 맨체스터 졌다는 것이 아쉬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는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을 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는 뭔지 모를 우울함에 빠졌습니다. 올드트래포드는 저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언제나 큰 이벤트 뒤에는 허무함이 있기 마련입니다. 두달을 넘게 기다렸던 경기가 2시간만에 끝나고, 경기가 끝난뒤 다른 이벤트없이 곧바로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향했습니다. 그제서야 이 경기는 시즌에 펼쳐질 수많은 경기들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뭔지모를 외로움에 빠졌습니다. 허무함과 외로움이 중첩된 기분이었습니다.

원래 이곳에 2 3일을 묶으려했습니다. 첫째날은 경기를 보고, 둘째날은 에티하드스타디움을 잠시 들린뒤, 리버풀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비틀즈의 도시, 그리고 안필드를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들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숙소에 푹쳐져있었습니다. 같이 방을 썻던 헝가리인들이 살가운 인사를 건넷지만 대구할 힘도 없었습니다. 숙소예약이고 뭐고 하루 일찍 저의 기숙사가 있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려했지만, 이곳에 와서 또 한곳 가고 싶은 곳이 있기에 꾹꾹참았습니다. 일찌감치누워 밀린 한국예능을 보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가려고 했던 곳은 바로 캐링턴 그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습구장입니다. 맨유의 팬이라면 꼭한번 오고 싶은 곳, 바로 캐링턴입니다.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차가 나오는 곳 앞에서 기다리면 이곳을 찾은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싸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준다는 바로 그곳입니다. 캐링턴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와 쌀밥을 먹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게 아쉬워서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지막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맨체스터에 대한 애증의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분명 제가 오고 싶어했던 도시였지만, 런던이나 다른 도시에 비해 회색빛이 감도는 맨체스터의 분위기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날씨또한 우중충해서 사람이 우울해지기 딱좋았습니다. 먹을건 비싸고, 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섭고, 정말로 외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내가 왜 이 곳을 그렇게 오고싶었나라고 후회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몇일동안 따뜻한 날이 계속되다가 어제부터 날이 추워졌습니다. 해를 본지가 이틀이 넘었고, 오늘 아침에는 비도 내렸습니다. 맨체스터 시내에서 40분동안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시골길을 20분간 걸어야하는 쉽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11 30분정도에 도착하면 12시쯤 훈련을 끝마치고 나오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시간을 잘 맞추어 도착했습니다. 가니 역시나 일본팬들이 절반정도 있었고, 현지팬들이 절반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자마자 이 곳을 관리하는 경비원 같은 아저씨에게 선수들이 언제쯤나오냐 그랬더니 1시에서 2시사이에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 훈련을 하지 않아 오늘 훈련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330분에 런던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놓은지라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나오는 선수들을 기다리며, 상황에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내가 이곳을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일단은 이곳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부상을 당한 스콜스가 먼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제가 가자마자 얼마안되어 클레버리와 필 존스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팬들을 위해 차를 멈추는 선수들이 적었습니다. 이곳의 경호원들은 차를 멈추는 것이 그날그날의 분위기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도 레알 마드리드전이 끝나고 바로하는 훈련이라 선수들의 기분이 좋지는 않은듯 보였습니다. 날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가 가장먼저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선수는 안데르손이었습니다. 팬들에게 많이 열려있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곧이어 루니와 나니가 나왔습니다만 차를 멈추는 일은 없었습니다. 두 선수들의 표정은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한 선수는 이적설에, 그리고 한 선수는 퇴장에 기분이 좋지않아보였습니다. 반 페르시, 퍼디난드등 제가 싸인을 받고 싶었던 주요 선수들도 차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늘 차를 멈춰 싸인을 해주던 치차리토와 데 헤아도 오늘따라 차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일하시는 분은 치차리토가 차를 멈추지않은게 놀라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캐릭, 발렌시아, 카가와, 그리고 두명의 수석코치인 펠란과 뮬레스틴의 사인과 사진을 찍는데에 그쳤습니다. 무려 3시간동안을 추위에 벌벌떨면서 받은 성과입니다. 다른날에 오신분들에 비하면 초라한 성과였습니다.

미리 예약해둔 버스를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퍼거슨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많은 팬들은 자리를 뜨고 저와 중국인 남성 두명만 남았고, 이 곳 직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퍼거슨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퍼거슨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맨유 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호날두가 돌아올 것 같다라는 이야기, 퍼거슨에게 레알 마드리드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 레알 마드리드전의 심판을 찾아달라는 이야기, 그리고 박지성과 에브라의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퍼거슨의 이야기는 저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퍼거슨은 절대로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본인은 이 세계적인 빅클럽의 감독이고, 자신이 클럽의 이미지를 좌지우지한다며 팬들의 요청을 100%다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팬들을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선수에게는 혹독할수도 있지만 팬들에게는 따뜻한, ‘Good man’이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올지 모른다는 것이 직원이 말한 함정이었습니다. 그는 5분뒤에 나올수도, 2시간뒤에 나올수도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했습니다.

30분을 기다렸을까, 퍼거슨이 나왔습니다. 저와 중국팬들은 쪼르르달려가 퍼거슨의 사인도 받고 같이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제가 “Thank you very very much”라고 하자, 퍼거슨도 “You’re very very welcome”이라며 답했습니다. 마치 시골마을에 가서나 볼 수 있는 온화한 영국 아저씨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줬고, 단 한순간만에 맨유라는 클럽에 대한 이미지와 그를 넘어 맨체스터에 온 것이 잘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따뜻하고 매너있는 그의 태도에 감동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퍼거슨은 차를몰고 떠났고, 저는 운이 좋게 20분이 넘는 시골길을 이곳에서 친해진 직원의 차를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추위에 떠는 저를 가엽게 여겼나봅니다. 차를타고 오는 길에 퍼거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었습니다. 올해 71살인 퍼거슨은 매일같이 6시에 이곳에 나와 체육관에서 2시간정도 운동을 한뒤, 아침을 먹고, 선수들과 훈련을 하고 그 뒤에는 전술을 만들고 집에 간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말이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정말 세계적인 명장은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0년이상 이끌고, 이 시간동안 거의 매번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자신의 위치에 책임감을 느끼고, 팬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고, 매일마다 아침일찍나와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던 껌씹던 영감님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치밀하고 자기관리가 투철한 사람이지만, 또 인간적인 매력까지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리고 경기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커다란 랜드마크도, 그 짜릿한 골도 아닌 사람입니다. 스완지의 캐피털원컵에서 만난 스완지팬의 환대와 1분정도밖에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느꼈던 퍼거슨의 인간다움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라는 걸, 다시한번 느끼게 했던 맨체스터 여행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맨체스터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뻔 했지만, 퍼거슨이 보여준 잠시의 환대는 맨체스터에 대한 기억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세계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이며,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인물인 퍼거슨이 한 동양팬에게 베푼 호의였습니다. 높은위치에 있을수록 이런 호의를 베풀기가 힘들다는 걸 알기에, 퍼거슨이 너무나 멋있게 느껴집니다. 포르쉐와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니는 주급수억원짜리의 선수들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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