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골, 환희의 순간에 그는 태극기를 향했다

Posted by Soccerplus
2014. 1. 12. 07:30 해외파 이야기/기성용

기성용이 리그 2호골이자 이번 시즌 세번째 골을 넣었다. 리그 2호골이었고 프리미어리그 첫 필드골이었다. 팀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를 거뒀고, 몇 라운드째 벗어나지 못한 최하위를 드디어 벗어나게 되었다. 선더랜드는 최근 9경기동안 5승 4무 1패의 호성적을 거뒀고, 지난 FA컵, 리그컵, 그리고 오늘 리그경기까지 3연승을 달리며 강등권 탈출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담 존슨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친 가운데 기성용도 1골과 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경기 내내 장지현 해설위원이 말했듯, 기성용은 최근 20일동안 7경기를 선발출장했다. 그 중에 단 한 경기만 교체가 되었고, 나머지 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체력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기성용은 박싱데이 이후 오히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아담 존슨이 당연히 맨 오브 더 매치에 뽑힐 만한 기록을 남겼지만, 한국 팬들에게는 기성용의 활약이 너무나 반가운 경기였다. 

기성용은 이 날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풀럼의 홈에서 벌어진 경기였고, 리그 최하위를 상대로한 풀럼의 공세가 대단했다. 스콧 파커, 클린트 뎀프시, 욘 아르네 리세, 필립 센데로스 등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구성된 풀럼의 기세는 초반 선더랜드를 압도했다. 선더랜드는 중원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상황에서 아담 존슨의 그림 같은 프리킥이 골네트를 가르면서 중원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기성용이 압박에서 어느정도 자유롭게 되면서, 선더랜드의 공세가 더욱 더 강해졌다. 풀럼의 공격일변도로의 변화는 오히려 선더랜드에게 약점을 노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반 종료 5분전, 우측면에서 프리킥 찬스가 왔고, 아담 존슨과 기성용은 약속된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냈다. 아담 존슨이 뒤로 살짝 흘려준 볼을 기성용이 그대로 슛으로 연결하며 골을 만들어 냈다. 기성용의 골로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고, 선더랜드의 입장에서도 확실히 승리를 노리는 경기 운영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후반전 코너킥 찬스에서 골을 허용하면서 선더랜드는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벗어나게 만든 것은 바로 기성용의 엄청난 스루패스였다. 기성용이 역습찬스에서 침착하게 볼을 소유하면서 아담 존슨의 쇄도를 기다렸고, 리세와 스톡데일 사이로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에 정확한 패스를 날렸다. 그리고 아담 존슨의 좋은 마무리는 기성용의 시즌 첫 어시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아담 존슨은 이후 패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기성용은 점점 완전체 미드필더로 진화하고 있다. 늘 그가 좋은 패스기록을 보여줘도 그의 뒤를 잡았던 것은 수비였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3개의 태클, 1개의 중간 차단, 2번의 클리어링과 2번의 헤딩 클리어링을 기록하며 8번의 상대공격을 막아냈다. 엄청난 활동량을 필요로하는 중앙 미드필더 지역에서 후반 막판 역습기회에서 가장 빠르게 문전으로 쇄도해 들어간 선수도 기성용이었다. 수비와 공격을 모두 신경써야 하는 포지션에서 두 개를 모두 다 확실하게 해내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두 부분 모두에서 확실한 활약을 했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기성용의 세레모니였다. 기성용은 골을 넣고 바로 자신의 진영인 남쪽 스탠드를 향했다. 선더랜드의 원정 팬들이 응원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기성용은 원정팬들이 모인 스탠드를 향하면서도 우측편으로 향했다. 바로 태극기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기성용은 분명히 태극기를 향해 뛰었다. 다른 선수들의 축하도 마다한 채 태극기를 들고 온 한국팬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배제되어있던 기성용이다. 그에게 태극기란 더욱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본인의 실수로 잃어버렸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게 되면서 그는 더욱 더 성숙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영국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곳에서, 그것도 홈팬들의 열기가 원정팀의 기세를 짓누르는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기성용은 한국팬이 들고온 태극기를 찾아 경기장 끝에서 끝으로 되돌아 갔다. 

크레이븐 코티지가 어떤 곳인가, 작년 2월 크로아티아와 대표팀이 평가전을 가졌던, 그리고 4:0이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던 경기장이었다. 그 이후, 이 유서깊은 경기장에 태극기가 비춰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기성용의 맹활약으로 태극기가 EPL 카메라의 원샷을 받았다. 

필자 역시도 작년, EPL 축구 여행을 다니며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정말 많이 보았다. 그리고 한국 선수가 나오는 경기에 태극기를 들고가 그들을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경기 카메라에는 비춰주지 않지만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를 보면 한 번이라도 꼭 그 곳을 봐주는 듯 하다.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손흥민, 지동원 필자가 관전했던 경기들 모두 한국 선수들은 나의 태극기를 향해 박수를 쳐주곤 했었다. 해외 유학생활에서 뭔지 모를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작년 2월 웸블리에서 열렸던 스완지의 캐피탈원컵 결승전에서 경기장에 유일하게 있었던 필자의 태극기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인사를 해줬던 기성용이 기억에 나기도 한다. 

그런 추억을 떠나 오늘 경기는 너무나 기분이 좋은 경기였다. 기성용이 더욱 더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경기이기도 했고, 앞으로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경기이기도 했다. 또한 기성용이 태극기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한 그를 경계하는 한국축구 팬들에게도 실력으로 인정을 받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1주일동안 꿀같은 휴식을 취할 기성용이다. 선더랜드의 강등권 탈출과 본인의 더 좋은 활약을 기대해본다.